심광현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최근 <아고라 2.0>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논쟁과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09년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가 결성된 이래 소수의 경제학자와 전문가 및 사회운동가들 사이에서 진행되던 토론들이 이제는 대중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다. 외국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은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10년부터 브라질의 일부 주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2012년 초 일본에서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극우파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가 기본소득을 자신의 주요 정강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시모토 도루는 ‘투기-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재원으로 ‘기본소득+보편적 복지’를 실행하자는 좌파와는 반대로, 복지예산을 없애 이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자고 주장함으로써 ‘기본소득 vs 보편적 복지’라는 양자택일적 구도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어느 네티즌(아고라 2.0, 11.2. <깨>)이 주장하듯이 기본소득은 “사실 좌우 어느 편도 아니다.” 기본소득은 일차적으로 내수시장을 활성화하여 “기업에게도 이익, 저소득층에도 이익, 소비도 진작시키며, 경제도 살려” 낼 수 있기에 “홍보력 있는 정치적 집권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푸는 대신 “막대한 재원에 대한 시민의 접근과 감시”를 골자로 하는 시민운동으로 풀어가자는, 독일 해적당의 ‘정보접근운동+기본소득’이라는 등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에서도 중심 재원을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중과세, 토지세, 생태세 등으로 확장하고 있는데, 이런 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정보 공개와 감시를 위한 지속적인 사회운동과 이를 통한 여론의 확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좌우버전은 1%의 부자들이 독점한 부를 사회로 환원하려는 사회운동의 유무에 의해 판별될 것이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부자들의 강력한 과세 저항을 결코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과 자동기술화


  그런데 <아고라 2.0>에서는 이런 좌파적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해 여러 이견이 개진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기득권 세력의 과세 저항 이외에도 인플레이션 문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기본소득이 오래된 노동규범(무노동=무임금)을 해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이라고 손꼽고 있다. ‘열심히 일하며 규칙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자신이 흘리는 땀에 대한 조롱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프로슈머’ 행위 자체가 현대의 지식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토플러의 주장에 기대어 기본소득은 소비자가 지식서비스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데 대한 사회적 보상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네그리 등의 자율주의자들 역시 기본소득은 다중의 집단지성을 착취하는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사회적 임금’으로서 다중의 정당한 권리 요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앙드레 고르나 제레미 리프킨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듯이 과학기술의 자본주의적 이용이 급격하게 증대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변화가 없는 한 지식노동에서조차 지속적인 인간 노동의 축소를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생산성이 늘어날 경우 종국에는 생산성 향상의 결과를 ‘일자리 나누기+기본소득’이라는 방식으로 재분배할 수밖에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OECD의 대다수 국가들은 이미 임계점에 접근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은 현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이 심화되는 것과 정비례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관계에서 비롯되는 모순이 폭발하게 되면 과거 대공황기에도 그랬듯이 자본주의를 수정-보완하려는 길과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길로의 분기가 불가피해진다. 기본소득의 좌우 버전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좌파적 기본소득운동의 두 축


   일시적 내수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삼는 우파적 기본소득과 다르게 좌파적 기본소득은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투기불로소득 중과세 등을 통한 재원의 지속적 확대와 일자리 나누기를 가능하게 할 사회구성원들 간의 강력한 연대. 둘째, 기본소득으로 늘어난 자유시간으로 비자본주의적인 문화적 향유를 통한 자아실현과 새로운 연대적 문화 형성. 셋째, ‘사회적 연대를 통한 노동권 확대’와 ‘문화적 향유(문화적 권리)’ 간의 선순환 구성이다. 특히 세 번째가 중요한데, 문화권의 확대 실현이 단지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소비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뿐이라면 지난 30여 년간 그랬듯이 사회적 연대와 기본소득을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게 강제할 정치적인 힘 역시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의 선순환 고리 형성을 통한 새로운 연대적 주체 형성이야말로 기본소득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의미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아직 기본소득이 주어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 좌파적 기본소득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투기불로소득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하기 위한 실현 경로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 및 여론형성이라는 축(독일 좌파당 방식),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소득 실현의 실질적 동력이자 목표인 새로운 연대적 주체 형성을 위한 사회문화적 협력 프로그램을 창안하고 실천하는 축을 교차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대적 주체 형성을 위한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선순환 고리 형성


  오늘날 파편화된 소비자본주의적 주체성의 형태 변화를 위해서는, 파업과 물리적인 투쟁 상황에서의 노동운동과 문화운동 간의 단속적인 협력을 넘어선 일상적 차원에서의 지속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다.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 단위들과 문화운동, 학생운동 단위들이 적극적으로 상호 협력하여 지역과 대학 단위로 ‘지역문화교육생활협동센터’ 혹은 ‘민중의 집’을 세워 새로운 생산양식과 생활양식을 시뮬레이션하고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하는 복합적 네트워크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 네트워크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소비중독/노동중독/화폐중독에서 벗어나 자신으로 하여금 문화적 잠재력과 다중지능을 현실화하는 생태문화적 창조자로 전환될 수 있게 하고, 노동/문화/생태적 생활양식 간의 균형을 스스로 잡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자율적이고 자치적이며 연대적인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운동 형태가 될 수 있다. 또한 참여예산과 참여도시계획과 같은 실질적 프로그램 운영과 문화교육, 그리고 생활협동조합 운영 등의 다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적 허브로도 기능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좌파적 기본소득운동은 새로운 연대적 주체 형성을 위한 ‘사회운동과 문화운동 간의 선순환 고리’ 형성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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