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전문화된 과학기술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려는 게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일일까. 또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지난 9일 본교 사회학과(BK21 사업팀)와 중앙사회학연구소가 주최하는 콜로키움 ‘후쿠시마 이후, 과학기술에 대한 질문’이 R&D센터 207호에서 진행됐다. 첫 번째 발표자인 이영희 교수(가톨릭대 사회학전공)는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시민 참여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통해 위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했다. 특강의 진행 순서는 본격적인 발표가 이뤄진 뒤에 질의응답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랭던 위너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입법과 같이 시민들의 삶을 압도적으로 규정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기술적으로 복잡해지면서 소위 ‘전문가주의’는 갈수록 강화되는 반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상당히 위축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지식이 특화되면서 일반 시민들과 점차 괴리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이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들만이 과학기술의 논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가 수반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란 일반 시민들도 특정 과학기술의 연구 개발이나 정책 입법 과정에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로서 참여해 논의를 개진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기술관료주의는 기술적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전문지식을 이용해 지배하는 행정체계이자 공공정책 결정의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이것의 이면에는 대중을 끊임없이 선도해야 하는 무지몽매한 존재로 간주하는 전문가들의 폐쇄성과 배타성이 깃들여져 있다. 그러나 이는 경험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판단된다. 대체로 일반 시민들은 기술적 전문가들이 지닌 지식과는 상이한 종류의 지식[Lay knowledge, Local knowledge(경험적 성찰)]에 기반을 두어 논의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그와 유사한 기술적 환경을 오랫동안 겪었던 일반 시민들이 오히려 ‘생생한’ 지식을 더 많이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듯 기술정책을 결정하는 데 대중적 참여주의가 대두되면서 근래의 ‘기술시민권사상’으로 발돋움했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과학기술의 민주화는 방법적으로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시위나 집회, 피케팅과 같은 사회 운동적 참여 행동에서부터 합의회의, 시민배심원회의, 투표 등과 같은 숙의적 시민 참여제도에 이르기까지 참여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나 단순 취합의 선호취합적 방식보다는 참여자들이 직접 학습과 토론을 거쳐 성찰하면서 자신들의 판단과 관점을 변화시키는 숙의적 방식의 시민 참여가 보다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여연대의 ‘시민과학센터’에 의해 합의회의가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러한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다듬어 과학기술정책 결정 과정에 일반 시민과 소비자, 현장과학기술자와 이해당사자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오창록 편집위원 | needyourey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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