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 세이브더칠드런 긴급구호 커뮤니케이션 담당

<Trek of Tears>, Martha Rial, 1998
<Trek of Tears>, Martha Rial, 1998

지난 6월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에 있는 세네갈, 말리, 모리타니아,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차드 등 사헬 지대에 긴급구호가 선포됐다. 2억4천6백만 가량의 인구 가운데 천870만 명의 주민들이 식량 위기의 타격을 받고 있으며, 백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고통당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최빈곤 국가인 니제르는 인구의 60% 이상이 최저 빈곤선 이하에서 시달리고 있다. 영유아 6명 중 1명이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인해 5번째 생일을 맞지 못한 채 사망하고 있는 현실이다. 인구 만 명당 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의료 인구(간호사나 산파 포함)는 2명에 불과하다. 기후 변화로 인해 먹을 것을 재배할 땅도 척박해 식료품 가격이 57% 이상 상승했고 매년 건기와 우기 속에서 수확량은 70%까지 감소하는 등 서아프리카의 위기는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구호 물자, 배가 고파 앙상한 아이들, 황량한 사막, 건조한 기후, 말라 비틀어진 가축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곳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위기 상황은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국제 사회가 원조의 명목으로 막대한 돈과 물자를 지원하고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관심은 계속되는데도 어째서 노력의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과 월드비전은 올해 8월 1일 공동전략보고서 <일상적 위기 상황의 종식>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서아프리카 식량 위기의 악순환을 ‘회복력 결핍’이라고 진단했다. 회복력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외부의 충격에 견뎌내고 스스로 회복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사실 긴급구호의 관점에서 볼 때 서아프리카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식량 부족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이들의 지역사회 내 가장 취약한 가구와 계층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다. 매년 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는 예견되고 있다. 하지만 작년 위기의 충격을 극복할 겨를도 없이 또 올해의 위기가 반복돼 아프리카는 가뭄으로 굶주리고 질병에 노출된, 비틀거리는 무기력한 대륙으로 신음할 수밖에 없다.


사헬 지역의 식량 위기라는 큰 그림에서 보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국가 단위에서 지역사회, 작은 마을, 개별 가구와 개인으로 갈수록 위기 상황들이 어떤 모습으로 일상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뭄이 오고 흉년이 들면 대개의 가정에서는 한 주에 두 끼를 먹는 경우도 있고, 야생식물의 잎과 섞어서 끼니를 때운다. 부모들이 생계를 위해 땔감이나 팔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아 떠나면 아이들은 방치된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찾아 떠난다. 아프리카의 높은 문맹률과 아동노동의 문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집집마다 생존에 급급해 시장 가격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가정자산인 가축을 팔아넘긴다. 이렇게 내다 파는 순간 시장의 가격 기능은 상실된다. 나중에 현금이 생겨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려 해도 이미 시장은 기능을 상실해 구매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기본 생계 터전인 농지를 파괴하는 기후 변화, 만성적인 빈곤, 불공정한 국제 무역, 농업 정책도 마련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 에이즈의 공포, 내전 등 갖가지 요소들이 서아프리카의 위기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노동인구가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경제 기반은 극도로 약화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회복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통합적이고 광범위한 장기적인 전략 마련과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도 시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사헬 지역에 대한 긴급구호가 또 다시 발령됐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설명에 앞서 한 가지 예화를 들어 보겠다. 여섯 명의 시각 장애인이 코끼리 한 마리를 각각 다른 위치에서 만져 봤다. 잠시 후 만져 본 대상이 무엇인지 말했다. 그들은 각자 코끼리를 뱀, 뾰족한 창, 딱딱하고 넓은 벽, 굵은 기둥의 나무, 활짝 펼쳐진 부채, 긴 밧줄이라고 묘사했다. 코끼리의 부분만 봤을 뿐 전체의 본질은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회복력을 위해서는 시민사회, 개발 협력 파트너,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해당 지역의 정부, 그리고 각 정부 간의 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각 국가, 유엔기구, 국제 개발 NGO 등 아프리카 개발의 주체들이 각자의 사업을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코끼리라는 전체와 본질을 놓친 여섯 명의 경우처럼, 현재 그들의 노력에는 구조적인 변화나 회복력을 갖는 데 필요한, 전체를 보는 리더십과 시스템이 결여된 상황이다. 지속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개별 주체의 노력뿐만 아니라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전체를 보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서아프리카의 상황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를 통합해 이끌 만한 정치적 리더십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 전체를 보기 위해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자는 구호만으로는 서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이 자립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 현장으로 들어가 그곳의 마을을 알고 그 지역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는 게 일차적인 과제다. 마을 사람들이 언제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작은 보건소를 세워 주고, 현지 보건 인력을 길러 내고, 현지 기후 변화에 적합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전수해 주민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한 마을이 기후 변화와 같은 외부 충격에 대해 회복력을 갖추기까지 국가와 마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민사회와 정치적 리더십, 그리고 시스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주는 성공 사례가 있다. 2004-05년 니제르의 진더, 틸라베리, 마라디, 타후아 지역에서 한 국제 구호 개발 단체는 농민자연재생관리법(FMNR)을 도입해 농업, 생태기술을 농민들에게 전수했다. 이 기술을 습득한 농민들은 풍년에는 곡물을 저장하고 흉년에는 재생력 있는 나무를 베어 음식, 사료, 땔감으로 활용하거나 시장에 팔아 관리했다. 또 토지의 부식작용을 막고 관개 시설을 만들어 토지를 비옥하게 개선하면서 생산성을 유지했다. 그 결과 2009년과 2011년 가뭄이 왔을 때는 그동안 비축한 농작물을 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같은 성공적인 결과에 고무된 니제르 정부는 재생관리법에 나오는 토지, 물 저장 기술을 “니제르인을 먹여 살리는 니제르인”라는 프로젝트에 도입해 국가 차원의 노력을 실시했다. 이후 2009년 가뭄이 닥쳤을 때 이 지역은 기근을 피할 수 있었다. 1970-80년대에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수확량 감소로 인해 매해 반복되는 위기를 겪었던 모습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이처럼 서아프리카의 위기로부터 주민들이 회복력을 갖추고 각 개발 주체들의 노력을 하나로 모아 사회 시스템의 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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