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 이화여대 철학과 외래교수



   여자의 얼굴은 지퍼로 되어 있다. 반쯤 열린 얼굴로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SF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성형외과 광고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의료 행위라기보다는 미용산업에 가까운 성형외과, 피부과 광고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온 나라가 성형 중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성형을 원하는가? 아름다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왜 아름다움을 원하는가? 한국 사회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고 기회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하나의 원론이다. 한국 사회가 왜 세계적인 성형 왕국이 됐는지는 여러 각도에서 분석이 필요한 복잡한 주제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미용 산업 광고들은 그 속에 어떤 논리와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창과 같다. 
 

 

 
 

 

  성형을 비롯한 미용산업 광고들은 사실상 우리에게 모종의 지령을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지령은 다양한 신호로 구성돼 있다. 커진 눈, 높아진 코, 좁아진 턱은 하나의 신호다. 이 신호들이 숨긴 진짜 지령은 “아름다워져라”가 아니다. “자신을 부정하라!”다. 미용산업 광고들은 사람의 얼굴에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사람의 수준을 결정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태어난 조건과 다양성, 개성을 스스로 부정하도록 독려한다.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이러한 자기 부정을 가능하게 해주고, 대중매체가 외모 그 자체를 상품화함으로써 이를 정당화해 준다.
부족한 점을 고쳐 자신감을 얻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광고들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외모로 다른 이를 차별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 권력이 더욱 막강해지고 있는 것은 많은 돈이 오가는 하나의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태어난 그대로를 긍정하지 못하고 자기를 혐오하고 부정하는 과정은 산업으로 정착됐고, 그것은 스스로를 포장하는 광고들로 범람하고 있다. 이 유혹에서 벗어나야만 그 고리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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