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섭 / 이보섭융연구소 소장

<우리 민담으로 읽는 분석심리학>
 


  송석이라는 아이는 너무 바보 같아서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는 동무들이 놀리고 따돌리며 때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송석은 글공부를 포기하고 서당에서 멀리 떨어진 연못 둑에서 낮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나타난 한 노승이 일러준 대로 연못에 있는 잉어를 잡아먹고 힘이 세졌다. 서당에 돌아오니 동무들이 대추나무 위에서 대추를 따먹고 대추씨를 던지며 놀려 대자 송석은 화가 나서 대추나무를 뽑아 버렸다. 그 후로는 힘이 센 송 장수로 불려졌다. 송 장수는 장마로 물이 불어 상여가 건너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상주와 상여꾼을 두 손으로 성큼 들어 건네줬다. 그의 힘이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간신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를 모함하고 죽이려 했다. 어느 날 송 장수는 어머니께 농담 삼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딱 한 가지 방법은 겨드랑이 밑에 있는 잉어 비늘을 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신들에 꾀여 어머니는 아들이 잠자는 동안 비늘을 떼어 죽게 했다. 며칠 후 죽은 송 장수를 태우고 하늘로 올라가려던 용마가 연못을 빙빙 돌면서 울다 송 장수의 갑옷을 바위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마을 사람들은 송 장수의 혼이 깃든 뚜껑바위를 해칠 마음으로 뒷산에 올라가면 청천벽력이 내리고 소낙비가 와서,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도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서당은 의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지식이 잘 보존돼 체계적으로 전수되는 곳이다. 이에 대립되는 세계가 집단무의식의 세계다. 그래서 집단무의식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 집단의식의 세계로 노출되면 송석처럼 아둔하게 보여서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인물 중에는 집단의식에 결여된 직관과 초월적인 용기를 무의식에서 끌어올려 큰 기여를 하는 영웅들이 있다. 송석도 그러한 영웅에 속한다. 꿈을 통해 나타난 무의식의 지혜를 몸으로 소화해서 초인적인 힘을 획득한다. 꿈 속의 노승은 현자의 원형, 잉어는 자기원형이 현현한 것이다. 무의식의 세계인 물 속의 물고기는 때때로 의식 세계에 떠올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성질 때문에 자기원형으로 간주된다. 특히 잉어는 거센 역류에도 도전하는 힘이 있어서 인내와 용기를 갖춘 무사의 표장이었으며 용이 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집단의식의 사회로 돌아온 송석은 송 장수라 불리며 의로운 일을 한다. 그러나 기득권자는 질투와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영웅을 죽이려 한다. 모든 영웅은 자만심이라는 죄(Hybris) 때문에 배신을 당하거나 ‘영웅적인’ 희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여기서는 어머니에게 배신을 당한다. 모성의 파괴적인 힘이 작용한 것이다. 보통 영웅에게 부족한 것은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소나이다. 페르소나의 기능에는 집단의식의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성질이 있다. 갑작스럽게 얻은 초인적인 힘으로 페르소나 없이 세상에 노출되면, 마치 로또에 당첨됐으나 엄청난 부로 인해 오히려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과 같은 운명에 처한다. 물질적인 힘이든 육체적인 힘이든, 정신적인 힘이든, 그것은 주변 사회와 인간의 심리 속 악의 세력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즉 발달된 인격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힘을 소유하게 된 개인을 해칠 수 있다. 페르소나는 흔히 옷으로 상징된다. 송 장수의 갑옷도 그의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개인으로서의 인간(Person), 인격(Personality)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다. 집단무의식의 힘으로 영웅이 된 송 장수가 개발해야 할 개인으로서의 인격은 뚜껑바위, 즉 변환과 새로운 탄생을 주는 긍정적인 모성의 자궁 속에서 우주의 보호를 받으며 한을 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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