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이 숭숭 스며드는 이맘때는 아이스커피 대신 따뜻하고 달착지근한 것이 당긴다. 영화도 그렇다. 공포물이나 코믹액션물보다는 로맨틱하거나 감동스런 드라마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슬픈 영화도 괜찮겠다. 가을이니까.
 

  슬픈 영화의 핵심은 슬픔이라는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픈 이유는 무엇이며, 행여 눈물을 흘리고 난 후에는 어떤 효과가 생기는가, 이런 기능을 하는 영화의 요인은 무엇인가 사유해 보는 데 있다. 비극이 어떻게 감동을 주는지에 관한 연구를 보면 특히 죽음에 대한 현저성이 높을 때 비극적 엔터테인먼트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결과가 있다. 영화는 안전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공포와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공포관리이론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유발되는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승인의 욕구가 강해지며 그로 인해 변화되는 삶의 태도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관점으로 볼 때 비극 또는 두려움을 주는 영화가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갓 서른이 된 주인공 정원은 스무 살 남짓한 주차단속원 다림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죽음으로 이별한다. 이처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도 죽음에 대한 현저성이 높은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풍경 속에서 정원 또한 풍경처럼 조용히 죽음과 대면하고 공포와 슬픔의 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을 껴안는다.
 

  가장 거대한 미디어 콘텐츠인 영화는 객관성이 낮고 감정소구가 강한 유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의 심리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개념들인 감정 이입, 동일시, 유사사회적 상호작용 등이 일어난다. 이러한 심리과정들은 대체로 타인지향적 정서에 기반을 둔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은 소통과 즐김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시켰다. 하지만 혼자서 즐기거나 온라인으로만 연결되는 콘텐츠가 증가함에 따라 폐쇄성, 통제성의 상실, 상호작용성과 실재감의 감소라는 부작용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이니 인터렉티브니 하는 용어들이 넘쳐 나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내면과 세계에 얼마나 진실하게 ‘연결’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헛되이 흘릴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의 은유로서 초원사진관과 삶과 죽음의 은유로서 8월의 크리스마스.

 

한경은 편집위원 | femiwalk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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