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대 인권센터가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학내 인권 실태 조사 결과’에는 대학원생 인권 침해에 관한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 사례들을 훑어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섣불리 꺼낼 수 없는 문제들이 담겨 있다.

  교수의 프로젝트에 참가한 뒤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개인 학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경우, 학업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서도 적절한 보수를 받지 못한 경우, ‘개인 비서’처럼 교수의 사적인 업무를 처리하도록 지시받은 경우, 교수에게 자신이 쓴 논문을 빼앗기거나 교수의 논문을 대필한 경우, 연구비 유용 지시를 받은 경우, 교수의 지시 때문에 강제로 집합이나 행사에 동원된 경우, 폭언·욕설이나 성차별·성희롱·성추행을 당한 경우 등이다.


  이 같은 인권 침해 사례는 비단 서울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이른바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가 저럴진대 여타 대학들은 오죽할까.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횡행했던 일들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도대체 이러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도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가 일방적으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수직적 상하 구조와 도제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다. 언제까지고 학내 구성원들의 의식 각성만을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가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수 채용 및 평가체계, 논문평가시스템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에 각 대학들이 인맥과 학연이 아닌 실력을 중심으로 교수를 채용하고 평가해야 대학원생 인권 침해 문제도 차츰 개선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와 더불어 현재 많은 대학들이 자정 능력을 상실했으니 필요한 경우 정부기관 같은 외부의 개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본교는 지난 2월 교내 인권센터를 출범했다. 그로 인해 교내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를 중재하고 해결하며, 교내의 인권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각종 캠페인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다 실질적인 대안들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한편 서울대 인권센터의 발표에 교육부총장이 직접 나서서 조사 결과가 부풀려졌다고 교수들에게 서둘러 수습성 이메일을 돌렸다는 후문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내놓기보다 그저 사태를 무마하려는 무사안일주의 역시 어제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학생을 생각하지 않는 저 같은 처사야말로 자신의 행동이 인권 침해인지도 모르는 후안무치한 의식구조의 토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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