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윤/철학과 석사과정

 
 
   찰스 다윈이 태어난 지 벌써 이백 돌이 지났다. ‘진화’는 겨우 수백 년 만에, 수천 년 동안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창조’와 맞먹는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진화에 대해 어딘가 모르게 폐쇄적이다. 게다가 심리적 기제들도 계속 진화해 왔다는 진화심리학의 이론은 생물학적 진화론보다 받아들이기 훨씬 더 껄끄러워한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설명을 제시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욕망의 진화>는 사랑이 어떻게 인정받는 짝짓기(결혼)가 되고 어떤 사랑을 해야 종족 번식에 유리한지 진화심리학적으로 풀어서 설명했다. 인간은 번식 성공을 위해 번식에 유리한 특정 형질들을 선택한다. ‘결혼’ 또한 종족 보존을 위해 선택된 하나의 전략이다. 결혼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인간들은 결혼하기를 선택했다. 또한 누구를 배우자로 맞을 것인가 결정하는 심리적 기제들을 축적해 왔다. 이것은 개체를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다. 짝짓기의 경우에 이를 ‘성 전략’이라고 한다. 결혼 외에 혼외정사나 불륜, 다수의 배우자를 갖고자 하는 시도들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전략들이 뒤얽힌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유전자를 번식시키는 데 성공해 우리의 조상이 됐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도태됐다. 어찌 보면 폭력적인 번식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과 결혼을 이런 시각으로 보는 것을 불쾌해 한다. 이는 마치 내 사랑의 주체가 내 마음이 아니라 보존돼야 할 나의 유전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율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사랑이 사실은 유전자의 전략이었다! 사랑만은 끝까지 순수하게 남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는 사랑이 물질적 지배의 결과가 아니기를, 어떤 기제의 피지배 대상이지 않기를 바란다. 데이비드 버스는 이러한 이상적인 관점의 파괴를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짝짓기에 관한 진실을 직시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짝짓기의 보편적 선호 경향을 갖추게 됐는지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할 뿐, 우리가 오해하듯이 ‘환경적 영향을 배제한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버스도 인정하는 것처럼 인간 행동은 여러 조건이 상호작용한 산물이기에 ‘인간은 어떻게 살고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진화심리학 이후에도 여전히 미결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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