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철 /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아프리카는 제국주의 열강의 수탈, 식민시대 이후에도 계속되는 포스트콜로니얼 지배, 인종차별, 그리고 가난으로 지속적인 억압을 당하고 있다. 에이즈와 같은 전염성 질병으로 인한 공중보건의 위기와 그 과정에서 뿌리 깊게 자리잡은 성차별, 그리고 피폐한 의료 등은 아프리카 공중의 기본적 건강권과 생명권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는 2011년 12월 기준 3천420만 여명인데,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이 감염자의 68%, 에이즈 사망자의 약 75%를 차지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발병률이 가장 높다. 정부는 인구의 20-30%가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추산하지만, 이보다 감염자 수가 많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확산은 개인과 가정의 삶을 파탄시키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근간을 파괴하고 있다. 30-40대 인구가 에이즈로 대거 사망하면서 질 높은 노동력을 잃고 고아가 양산되며 기대 수명도 낮아지고 국민총생산마저 하락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감염자들 대부분은 특허로 인해 높게 책정된 에이즈 치료약을 구입할 수 없다. 공중보건 위기를 “공동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자, 의약품의 결핍과 공동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보건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지 않은 상태”로 규정한다면, 현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에이즈 치료약에 대한 접근 제약 때문에 심각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에이즈 위기로 국가의 기반이 흔들림은 물론, 건강권마저 초국적 제약회사로 대표되는 자본에 종속되면서 새로운 제국주의적 지배에 신음하고 있다.


   대중 매체는 주로 에이즈를 동성애, 주사기 공유, 약물 남용, 일탈적 성생활 등의 개인적인 또는 라이프스타일 요인들과 연관지은 프레임으로 만들어 내지만, 에이즈 확산의 주원인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다. 즉 가난과 불평등, 탐욕, 신식민주의와 성차별, 편견과 낙인이 에이즈 문제를 악화시킨다. 세계인의 3분의 1,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절반 이상이 기본적인 필수의약품을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제약특허는 시장에서 경쟁을 배제하고 대기업의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며, 제네릭(복사) 의약품 생산을 저지하고 특허 의약품의 독점을 유지하는 데 특허권을 이용한다. 제약회사들은 북미, 유럽, 일본을 기준으로 비싼 약값을 정한 뒤 전 세계에 동일한 약값을 강요함과 동시에 값싼 제네릭 의약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반인권적이며 반경쟁적인 제약특허 및 약품 가격 책정 시스템에서는 가난한 아프리카 에이즈 감염자들의 치료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건강은 생의학적 이슈임과 동시에 사회·정치적 결과물인데 사회에 내재한 인종주의, 가난, 차별, 편견 등의 구조적 요인들이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서구에서도 흑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이나 인종적 소수자의 에이즈 감염률이 훨씬 높은데, 이들은 의약품과 치료의 혜택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미국의 라틴계는 미국 전체 에이즈 감염의 20%를 차지해 백인에 비해 4배가 많고, 성병과 자궁경부암 발생률도 높으며, 자궁경부암 사망률은 백인에 비해 50%나 높다. 미국의 흑인은 12% 정도이지만 에이즈 감염의 52%를 차지한다. 13세 이상 흑인여성의 비중은 13%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연령대의 여성 감염자 중 63%를 차지하며, 평균 수명은 5년 정도 짧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에이즈 감염에 더욱 취약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 낙후된 위생 및 의료 시설, 가난, 성의 상업화, 일부다처제와 남성 중심의 성 관계로 인해 에이즈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여성의 감염 비율이 높은데다, 신생아로의 수직 감염도 심각한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프리카의 경우 초국적 제약회사가 높게 책정한 에이즈 치료약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사망률도 높다. 정치경제적 취약함과 함께 질병에 대한 관점, 젠더 간의 관계, 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도 에이즈 예방 행동과 감염 후의 치료 상황에 영향을 준다. 아울러 말라리아, 결핵과 같은 전염병들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을 더욱 높인다. 이러한 복합적인 취약함과 치료약에 대한 접근 제약이 맞물려 에이즈 위기는 악화된다. 이 지역 인구의 평균 수명이 1980년대 49.2세에서 2005년에는 40세로 하락했으며, 경제활동 인구의 에이즈 감염률이 높아 경제사정 역시 더욱 나빠지고 있다.


   지적재산은 눈에 보이는 물건과 달리 동시 소유와 이용이 가능하며 재생산 비용이 낮다. 즉 지식 제품은 비배타적이며 소진되지 않기 때문에 독점적 사유재산권 부여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선진국들은 지적재산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강화해 이윤극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제약특허를 비롯한 지적재산권의 확대는 정보와 지식의 공익성과 치료약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기본권에 배치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권리라기보다는 서구의 특정한 시기에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통해 형성된 개념이다. 18세기 이후 자본과 시장의 영향력, 특히 정보와 지식중심의 경제가 중요시되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도구로 등장했다. 이를 볼 때 지적재산권은 과거 식민지배권력이 식민지 시대 이후에도 정보와 지식생산 및 시장경제에서 우위를 점하며 후기식민주의적인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체계로 작동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적재산권은 과학이나 기술 등 창조력이 있는 개인이나 국가에는 지적 생산물의 소유권 독점을 통한 혜택을 주는 반면 지식과 창조력이 부족한 개인이나 국가에는 접근비용의 상승을 낳아 피해를 준다. 이는 국가 간 지식 격차와 불평등을 확대하며, 제약특허의 경우 치료약에 대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공중의 건강권을 위축시키고, 공중보건 위기에 대한 대처에도 장애가 된다.


   공중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서는 필수의약품의 제공, 모든 보건 시설, 상품 및 서비스의 평등한 배분, 유행성 질병과 풍토병 예방, 그리고 치료에 대한 접근성 고취가 필요하다. 건강권은 최상의 건강상태를 누리고 치료약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실현되는 기본적 인권인데, 지적재산권이라는 사적재산권 보호 장치와 충돌한다. 제약회사들의 제약특허 독점과 횡포에 맞서 에이즈 치료약의 특허 철폐와 가격 인하를 주장해 온 그룹들은 “이윤보다 생명이다”, “특허보다 환자가 우선이다”라는 슬로건으로 투쟁해 왔고 일부의 가격을 인하시키는 성과를 내오고 있다.


   하지만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지적재산권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특허 대상 확대 및 특허 취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비특허 의약품인 제네릭 에이즈 치료제를 보급해 에이즈 위기에 대처했는데, 거대 제약회사들과 미국 정부는 특허권 사수를 위한 공세로 대응한 바 있다. 초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에 대한 특허가 인도에서 거부되자 인도 정부를 상대로 인도특허법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노바티스가 승소하면 기존 약에 작은 변화를 가하는 것만으로도 특허를 받고, 인도는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하지 못해 개발도상국 환자의 생명권이 위협받게 된다. 인도는 ‘세계의 약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 제네릭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개도국에서 사용하는 에이즈치료제의 90%, 세계 에이즈 치료제의 50%를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인도의 특허 체계에 대한 초국적 제약자본의 공세는 아프리카처럼 가난한 지역에 사는 에이즈 감염인들의 건강권을 더욱 위협할 수 있다.


   “특허보다 생명이 우선이다”를 내세우는 에이즈 치료약에 대한 특허 철폐 운동과 에이즈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건강권 확보 운동은 더욱 강력히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에이즈 예방 및 감염인에 대한 차별 철폐 운동과 더불어, 에이즈 치료약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고 감염인의 건강을 지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에이즈 관련 단체들과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연대하는 ‘밑으로부터 조직되는’ 제약 특허 반대 운동은 에이즈 감염자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윤과 특허보다 인간 생명이 우선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바탕으로 초국적 제약자본의 제약특허를 통한 신식민주의적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에이즈로 인해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 공중보건의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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