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을 두 달 여 앞둔 요즘, 각 당의 경선 및 출마 선언을 통해 후보들이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그에 따라 정치권에선 각 후보들에 대한 검증이 한창이다. 그런데 얼마 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박 후보는 언론을 통해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는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인 측면도 있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라고 말해 이목을 끌었다. 이로써 스스로가 아직 유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 셈이 됐다. 이에 이택광 교수(경희대 영미문화전공)가 리트머스 블로그에서 “유신에 대한 가치 판단의 책임을 본인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리는 태도를 취한 것”이라며 “가치와 판단을 뒤섞어서 기존의 합의를 뒤흔드는 것”이라 지적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그는 “5.16 쿠데타가 반드시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가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박 후보의 발언에 담겨 있는 숨은 의도”이며 거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확충을 달성하겠다는 그 문제의식”이라고 평했다.

  유신체제는 분명히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 사건이다. 또 그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됐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혁당 사건’은 독재 권력이 어떻게 지배논리를 고착화시켰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난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재심 선고 공판에서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됐던 8명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들에게 국가 전복 기도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사건 발생 30여 년 만에 오심을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조치였을 뿐이다. 이미 희생당한 이들의 넋과 살아남은 유가족들의 아픔은 어느 누구도,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 이것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치부한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데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여당의 실질적인 총수이자 한 나라의 대선 후보로서 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니다. 박 후보가 계속해서 이러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4.19와 5.16은 동일한 의미의 구국혁명’이었다고 말했던 지난날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단 한 치도 발전하지 못한 꼴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박 후보가 유신을 주도한 당사자는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한 나라의 대선 후보로 국가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똑바로 밝히는 것이 맞다. 그리고 정치공학적인 이득을 따지기 전에 반드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진정 어린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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