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한 금액을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이런 정책을 실시하는 경제가 과연 작동 가능할까? 그리고 그게 바람직한 경제가 될 수 있을까?

  우선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은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다. 미국의 알래스카 주는 1970년대부터 모든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석유 수입에 로열티를 부과해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조성하고 그 수익금으로 매년 천5백 달러 정도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소득 수준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다. 그러나 알래스카 주는 이 정도의 기본소득으로도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가 됐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소득분배가 개선된 유일한 주이다. 알래스카의 사례는 기본소득의 질문들에 대한 좋은 답변이 된다. 즉 기본소득은 작동 가능한가? 수십 년 동안 작동해 왔다. 바람직한가? 소득분배에 큰 개선이 있었다.

  이란은 국가 단위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는 최초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은 산유국이라 휘발유 등 에너지의 국내가격을 매우 싸게 매겼는데, 이로 인해 에너지 낭비가 극심해졌고 많은 양의 휘발유를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휘발유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이란은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2010년 12월부터 에너지 가격을 3배에서 10배까지 올리는 대신 모든 국민들에게 1인당 매월 45불의 소득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작동 가능성? 이란의 경제는 봉쇄가 날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효과? 이란은 에너지 낭비가 급격히 줄면서 다시 휘발유 수출국이 됐다. 절대빈곤율은 10% 이상 감소했고, 중산층의 실질소득도 증가했다.
 

 
 

기본소득 경제, 어떻게 작동 가능할까?


  알래스카와 이란의 기본소득은 모두 천연자원으로부터 생기는 수입을 재원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란의 경우에는 정책 실시 이후 에너지의 시장가격이 몇 배로 올랐기 때문에 에너지에 대한 과세를 재원으로 하는 모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미 지구상에 기본소득의 재원으로서 천연자원과 조세라는 두 가지 모형이 실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을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조세를 재원으로 실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OECD 국가의 총조세부담률(순수한 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금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35% 정도이고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45% 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5% 정도이다. 이는 OECD 평균보다 10% 정도, 북유럽 국가들보다 20% 정도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GDP는 천3백조 원이 넘을 것이므로,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세금을 내기로 합의한다면 무려 130조 원 내지 260조 원의 조세 수입 증가가 가능하다. 1인당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보장하는 데에는 180조 원이 필요하다. 기초노령연금, 보육료 지원, 기초생활보장 등 이미 지급하고 있는 부분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기본소득 실시가 가능하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이렇게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재원 다음으로 작동 가능성에서 중요한 문제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경제가 과연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따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누가 노동을 하겠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과장된 것이다. 첫째, 금액이 적은 경우에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알래스카나 이란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받기 전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달에 30만 원을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정규직 직장을 버릴 근로자는 아주 드물 것이다. 만약 일을 하지 않더라도 기초적인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생활비를 보장할 수 있는 나라라고 한다면,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으면서 노동 그 자체가 삶의 기쁨이 되는 새로운 코뮌주의 사회가 건설된 다음일 것이다. 둘째, 기본소득은 기초생활보장보다 노동유인이 더 크다. 예를 들어 3인 가구에게 한 달에 90만 원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수급권자에게 월급 80만 원의 일자리를 제안하면 수급권자가 일자리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어진다. 일을 해도 월 소득이 90만 원이고 일을 안 해도 90만 원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복지함정이라고 한다. 반대로 1인당 30만 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경우에는 일을 안 한다면 가구소득이 90만 원이고, 1인이 일을 한다면 가구 소득이 170만 원(3인 기본소득 90만 원+1인 월급 80만 원)이 되므로 일을 하는 만큼 소득이 늘어나게 된다. 기본소득은 복지함정이 없는 정책이다.
 

전통적 소득보장정책을 넘어서기


  이외에도 기본소득의 중요한 경제적 효과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전통적인 소득보장정책에 비교해서 낙인효과와 억울하게 탈락하는 사람이 없으며 행정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국가장학금처럼 선별적인 소득보장제도에서는 억울하게 탈락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를 정확하게 선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행정비용을 들여야 한다. 독일의 경우 선별적인 복지제도로 인해서 복지 재원의 10% 이상이 선별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선별복지를 신청하는 행위 자체로 사회적인 낙오자라는 수치심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불안정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자란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실업자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불안정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의미에서 프레카리아트라고도 불린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비정규직 850만 명(정규직 850만 명), 영세자영업 500만 명, 사실상의 실업자 300만 명 등 경제활동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불안정노동자이다. 지금까지의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철폐, 총고용 보장 등의 구호를 외쳐왔다. 그러나 이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철폐를 법으로 강제하게 되면 기업이 부담하는 비정규직 인건비가 2배로 늘어나야 한다.

  셋째, 기본소득은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수단이 된다. 완전고용은 일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얻는 상태를 말한다. 기본소득이 완전고용에 도움이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다. 완전고용으로 가는 경로는 노동 수요의 증가와 노동 공급의 감소로 나눌 수 있다. 기본소득은 중소기업이나 협동조합에서 노동 수요를 증가시킨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 저임금 노동, 고강도 노동 등 노동자에게 열악한 조건을 주는 노동의 경우 노동의 공급이 감소하게 된다. 기본소득이 생존을 위해서 강제로 하는 임노동을 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기초생활이 보장되면 힘든 노동에 대해서 더 큰 보상이 주어지게 된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최소한의 소득 보장이 되면 농촌에서의 친환경 농업, 협동조합에서의 노동, 사회적 기업, 시민사회 단체 활동 등의 분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넷째, 기본소득은 생태경제 건설에 도움이 된다. 생태세를 부과하면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하고 그로 인해 실질 소득이 감소하게 된다. 생태세로 마련된 재정수입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생태기본소득은 생태세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생태세를 GDP의 5% 수준까지 인상시키면 1인당 한 달에 4만 원 내지 5만 원의 생태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

  기본소득은 매우 급진적인 정책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주며, 완전고용과 생태경제의 건설에 다가갈 수 있는 정책이다. 동시에 기본소득은 부자들에게도 지급되지만 더 많은 세금을 걷기 때문에 그들에게 불리한 정책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은 선별적 소득보장정책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행정 비용과 낙인효과가 없다. 결국 기본소득은 단순한 소득재분배정책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기초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기본권의 이념을 구현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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