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 이화여대 철학과 외래교수

  멋진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휘파람을 불며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메시지가 오자 여성은 첨부된 문서를 수정한 뒤 다시 검토하라며 부하 직원에게 되돌려 보낸다. 스마트폰 제조사 광고의 한 장면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여유’와 ‘자유’를 읽는다. 여유롭게 일광욕을 하는 여성과 최첨단 스마트 기기의 조합은 성공한 삶의 여유와 자유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는 철저히 허구다. 정말 자유롭다면 휴가지에서는 휴가만 즐겨야 한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휴가지에서조차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노예의 삶과 같다.

 

 
 

  어떤 이동통신사 광고는 우리에게 ‘쇼를 하라’며 명령하기도 한다. 이런 명령형을 들으며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나는 자극적이고 유쾌한 일을 연상하지만 이는 사실 특정 이동통신사의 서비스를 구매하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대로’라는 카피 역시 비슷하다. 이 광고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자기 생각대로 선택하는 능동적인 삶을 살라는 조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제한 요금제를 택하면 문자건 데이터 통신이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광고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광고들이 특정 회사의 영업 전략과 컨셉을 모두가 추구해야 할 삶의 패턴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왜 이동통신사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과 격려를 들어야 하는가? 왜 책이나 멘토, 또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한갓 상업적 광고로부터 이렇게 살아도 좋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침을 얻어야 하는가?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광고는 특정 서비스와 특정 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마치 라이프 스타일 전체를 선택하는 일인 것처럼 이미지를 조작한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돈을 써야 하며, 어떤 삶이 멋진 삶인지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다. 이를 간파하고 저항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그들이 제시하는 삶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