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섭 / 이보섭융연구소 소장

 
  옛날에 근심 걱정이 없는 무수옹이 살고 있었다. 아들이 열둘에 딸 하나가 있는데 모두 혼인해서 손자, 손녀를 낳고 유복하게 살았다. 열셋 형제는 효성이 지극해 서로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아들은 한 달씩, 딸은 사 년마다 한 번 씩 돌아오는 윤달에 모시기로 했다. 매번 자식들 집에 갈 때마다 따뜻한 방과 맛난 음식, 손주들의 재롱이 무수옹을 반겼다. 소문을 들은 임금은 무수옹을 불러 오색찬란한 구슬을 주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잘 간직하라고 했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뱃사공이 무수옹의 구슬을 구경하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렸다. 임금이 무수옹의 근심거리를 만들기 위해 몰래 꾸민 일이었다. 무수옹은 당황스러웠지만 사공을 안심시키고 집으로 갔다. 얼마 후 임금은 무수옹에게 구슬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자식들이 걱정했지만 무수옹은 “걱정들 말아라.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 맏며느리가 생선을 사와 요리를 하려고 배를 가르는데 이상한 구슬이 굴러 나왔다. 무수옹이 보니 바로 잃어버린 구슬이었다. 구슬을 되찾은 사연을 들은 임금은 “하늘이 준 복을 인간이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소. 과연 무수옹이군.”이라며 탄복했다. 무수옹은 남은 평생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잘 살았다고 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도 있듯이, 자녀들 문제로 고민하며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이 민담에서는 반대다. 무수옹의 자녀들이 서로 부모를 모시겠다고 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했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민담에 등장하는 임금은 성공한 인물로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며 행복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민담에서 임금은 말한다. “임금인 나한테도 근심 걱정이 적지 않은데 근심 없는 노인이라니 이게 웬 말인고? 한 번 만나보고 싶으니 불러들여라.” 세상에는 고집과 심술, 욕심과 집착으로 추한 모습의 노인들이 있다. 그러나 무수옹은 다르다. “어쩌겠습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 걸요.”라고 뱃사공을 즉시 용서한다. 열세 남매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걱정하면서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근심에 휩싸였지만 무수옹은 말한다. “걱정들 말아라.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이러한 무수옹의 태도는 분석심리학적으로 자아(Ich, ego)가 주도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Self)의 인도에 따르는 삶의 자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조바심 내면서 자아의 힘으로 풀려고 애쓰다가, 잘 안되면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고 급기야 마음의 병까지 얻는다. 하지만 자신과 남을 용서하고 두려움 없이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면 자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민담에서는 맏며느리가 사 온 생선의 뱃속에서 구슬이 나온 순간이 자기의 움직임을 뜻한다. 
 

  또한 민담에는 집단 무의식의 내용, 즉 영혼의 뼈대, 원형들이 담겨 있는데 그 모습은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유사한 모티브로 나타난다. 구슬을 삼켰다가 잡혀 와서 전해 주는 생선의 모티브는 서신을 어안()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물고기가 편지를 삼켰다가 받을 사람에게 잡혀가서 소식을 전해준 이야기이다. 이것이 자기의 역할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 물고기를 자기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의 집단의식 중심에는 자아가 있다. 이들의 자아가 집단무의식을 포함한 의식 전체의 중심인 자기에 큰 관심을 갖고, 이와 지속적으로 연결될 때만 무수옹처럼 조화롭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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