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이글 이글 애띤 얼굴 고운해야 솟아라” 서울에 이렇게 앳되고 고운 해 같은 공공미술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하지만 원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리는 법. 이제부터 그 미꾸라지 몇 마리의 볼썽사나움을 시부렁거리려 한다. 불행히도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장소에서 위용과 명성을 자랑하는 작품들은 참을 수 없이 권위적겵ㅔ÷岵隔� 상업적이다. 장소성과 역사성 그리고 친밀함은 실종됐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온종일 보초를 서는 이순신 장군은 떡하니 장소를 지배하고 호령한다.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라는 국가조직이 기획한 산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 ‘가카’께서 정치적 기반이 약한 군사정권의 출신 성분을 미화시키기 위해 세종대왕 대신 무장 이순신을 간택한 결과다. ‘가카’께서 직접 김세중 작가를 방문해 막걸리를 따라주며 격려했다는데, 이순신 장군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 이유가 작가의 작업실 천정이 낮아서였다는 후문이다.
 

 
 

  청계광장에도 사연 있는 작품이 우뚝 솟아 있다. 크리스 올덴버그의 35억짜리 작품 <스프링>이 그것인데 그 이름의 변천사 또한 우여곡절이 깊다. ‘인도양 조개껍데기’, ‘다슬기’, ‘샘’을 거쳐 <스프링>이 되기까지의 과정만 봐도 작품에 관한 논란을 짐작할 수 있다. 높이 20미터, 폭 6미터에 달하는 이 작품은 청계천의 생명과 생태, 소생의 의미를 담고자 했단다. 연간 관리비 77억 원짜리 펌프로 돌리는 청계천에 과연 생명과 생태가 존재하기나 하는가? 여러 촛불문화제 사진에도 멋있게(?) 등장하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이다. 장소성과 역사성, 동시대적 의미들을 담아 내며 만지고 놀 수 있는 작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군사정권의 문화정치가 21세기에도 남아 있는 현실,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노점상을 몰아내고 스테인레스와 오색 조명으로 도배하는 문화정치는 오늘도 건재하다. “해야 고운해야 해야 솟아라/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애띠고 고운날을 누려보리라” 60여 년 전 시인이 꿈 꾼 세상은 과연 이뤄졌을까.

 

한경은 편집위원 | femiwalk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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