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근준 / 미술·디자인 평론가

  최근 십여 년간 현대미술과 디자인은 여러 각도에서 중첩, 혼성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현대미술가들이 전유를 통해 디자인을 의태하는 것일까? 대량생산의 기회를 얻지 못한 디자이너들이 예술가연하는 것일까? 그런 양태가 전연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이런 중첩엔 그 이상의 의미와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이는 19세기 말 미술공예운동 이후 지속된 디자인 직능의 전문화가 1950-60년대에 정점에 달한 뒤 재차 미술과 중첩하기 시작한 길고 긴 과정의 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근년에 두드러진 변화상은 1970년대 이래 포스트미디엄의 상황이 형성겱??품�, 그에 현대미술가와 디자이너가 각기 유사한 방식으로 적극 대응한 결과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이론이 발흥한 1970년대 중반, 미적인 것들의 고전적 영역을 무너뜨리는 일을 창작으로 삼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 마치 쏟아지는 물을 이용해 수력 발전을 하는 일과 유사했다고 할까? 1980년대엔 저급한 문화의 요소를 고급한 상황으로 전치시키는 키치와 게이 하위문화의 악취미적 스타일링인 캠프가 짧은 전성기를 누렸고, 역사적 요소들을 원전의 맥락에서 떼어내 멋대로 사용하는 전유의 방법론이 유행했다. 미디어 이론의 허황된 낙관주의에 기댄 채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다시피 하는 뉴미디어 아트가 1990년대와 뉴밀레니엄에 이르기까지 몇 단계에 걸쳐 호시절을 구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기존의 미디어를 모두 재매개하기 시작하자 왕년의 높은 탑들은 분별없이 거의 모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21세기를 맞아 더 이상 쏟아질 것이 없게 되자 미적 미디엄의 세계가 보여주는 풍경은 급변해 완만한 구릉지의 모습이 됐다. 미적인 것들의 세계에 민주주의가 도래하니 지루하고 괴로운 다중심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수가 급증하고, 서로의 영토가 어디까지인지 몰라 미술에 속하는 것도 같고, 디자인의 영역에 속하는 것도 같은 모호한 성격의 중간 지대가 급격히 확대됐다.
 

  미술사학자와 미디어 이론가들이 미적인 것들의 분할과 배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본격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기술적 변동에 의해 전통적인 미적 매체가 무효화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미적 미디어로 재맥락화되(려)는 매체들을 ‘포스트미디엄’이라고 통칭했다. ‘포스트미디엄의 조건’ 혹은 ‘포스트미디엄의 상황’을 비평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수사의 목표였으므로, 이 말이 특정한 매체만을 지칭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해당 비평 용어의 틀로 현대미술의 미디엄에 대한 역사를 돌아볼 수는 있었다. 그렇게 바라본 과거는 일종의 서부개척시대 같았다. 따라서 누군가 포스트미디엄 시대에 미디엄 재발명의 연보를 작성한다면 눈치 빠른 작가들이 저마다 나서서 포스트미디엄 상황의 미개척지에 제각각 새로운 울타리를 치고 눌러앉은 사실들의 나열이 될 테다.
 

  문제는 이제 그런 식의 ‘빈 땅 차지하기’도 거의 끝이 나버려서 수많은 종류의 미디엄 재발명 가운데 유효한 것은 무엇이고, 무효한 것은 무엇인지 가려야 하는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울타리를 치고 눌러앉은 ‘작은 왕’들은 치외법권을 주장하며, 제각각의 프로토콜을 표준으로 삼아 ‘판단 유예’의 시절을 구가하고 있다. 디자인이 더 이상 20세기 식으로 디자인일 수 없고, 현대미술이 더 이상 20세기 식으로 현대미술일 수 없는 현재, 작가연하거나 디자이너연하려면 그런 폐쇄적 전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앞으로는 직업적 정체성을 재규정하는 것이 유효한 방법이나 전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1990년대 후반, 미술과 디자인의 접면이 움직이며 등장한 모호한 중첩지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그 가능성에 먼저 눈뜬 것은 앤서니 던 같은 이론가 겸 디자이너였다. 그가 <헤르츠 이야기>를 발간한 것이 1999년이었는데, 필경 그는 1997년 ‘정치-시학’을 주제로 내세워 20세기 정치적 미술의 방법론을 총정리한 <카셀도쿠멘타>나, 같은 해 11월 그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열린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의 심포지엄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비판적 성찰과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실천>에서 적잖은 영감을 받았을 테다.
 

  앤서니 던은 ‘기생-기능’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제품 인터페이스의 상징 기능에 주목하고, 비평적 소격 효과를 추구하는 디자인 실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실용성의 세계에서 살짝 비켜난 채 메타적 차원의 상징 기능을 구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해 무능해진 (모더니스트)디자인 방법론의 세계를 일부 대치했다. 그리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5년을 전후로 비평적 디자인의 흐름은 신주류의 지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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