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사회
[메디컬 디스토피아]너무나 사려깊은 위협, ‘건강하세요’허민호 / 문화연구학과 박사수료
박지혜 기자  |  utois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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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승인 2012.09.25  22: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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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일상적으로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관리하고 간기능강화제나 종합비타민, 피로회복제, 숙취해소제를 먹는다. 뿐만 아니라 카제인나트륨 대신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피부를 위해 (양조장에서 효모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피테라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사용하며, 비싼 유기농채소, 천연조미료를 찾아 마트를 헤맨다. 불과 10-20여 년 전에 우리가 알아야 했던 화학물질은 사카린이라는 인공 감미료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건강과 관련된 온갖 전문 용어들을 줄줄 외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건강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의학적 실천으로 가득 차 있다.

  의료화 혹은 의학화는 기존에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어떤 것들이 의학적 문제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그 문제들은 의학적 틀 안에서 의학의 언어로 진단되고, 의학적 개입을 통해 해결되는 것으로 변형된다. 예컨대 의료화와 더불어 성폭력 문제는 성적 권력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성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고, 약물을 이용한 성선자극호르몬의 분비 억제(화학적 거세)라는 개인의 성욕 통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한때 비도덕적인 것으로 평가받던 행위들이나 범죄들이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질병이 되기도 하고 출산이나 월경, 노화, 비만과 같은 일상적 삶의 측면들이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근심이나 부끄러움은 각각 범불안장애(GAD)와 사회불안장애(SAD)로 불리며, 산만한 아이들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분류되고, 남들보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저신장증으로 진단받아야 한다. 과거에는 개인의 특성으로 간주되던 것들이 이제는 의학적 개입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의학은 인간의 고통과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신성시돼 왔으며, 의학의 담지자인 의사는 인류애가 넘치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지닌 존경받는 전문가로 간주돼 왔다. 이는 과학적 지식에 준거하고 있으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탈정치화된 영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성적, 인종적 억압과 학살을 목격해 왔다. 여기서 의학의 정치성과 과학의 무지가 아주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이제 우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와 더불어 유전공학과 생체의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과학의 무지로 인한 희생은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미국 정신의학의 전환점이라고 불리는 정신장애 <진단통계편람 3판>에서는 마침내 동성애가 질병 목록에서 영구 삭제됐으며, 미국정신의학협회 의장이었던 멜빈 삽신은 <진단통계편람 3판>을 경유해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학의 승리가 이뤄졌다고 포고했다. 게다가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선언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일상생활의 의료화라고 부를 수 있는 흐름들은 그런 의학의 탈정치적 몸짓 이후에 도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의학적 표상의 질서

  우리의 몸과 건강은 생물학적/의학적 지식을 통해 진단되면서 분할 및 통합되는 하나의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몸이란 우리의 인식 외부에 있는 자명한 실체로서의 몸이라기보다는 혈압수치, 콜레스트롤 수치, 심박수, 간수치, 비만도, 혈당치 등의 온갖 지표들을 통해 표상되는 의학적 현실로서의 몸이다. 이 몸은 자연의 질서에 속한 하나의 실체이기 이전에 진료실에 놓인 스크린에 적힌 숫자들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런저런 지표들로 표상되는 의학적 현실은 경험적이고 물질적인 몸과는 다른 하나의 추상들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의 몸을 구성한다는 점에서(혹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인식하고 사유하고, 나아가 개입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의 몸으로 직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추상의 과정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실적 추상’이다.

  “과학의 승리”라고 불리는 흐름을 이끌었던 중요한 과학적 발전의 정점에서 우리는 게놈학과 같은 첨단 학문과 마주한다. 그러나 게놈학은 그 자체로 과학적 사실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표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들을 고안해 내는 장치이다. 게놈학은 실험과학과 정보과학의 접합물이며, 무엇보다 데이터베이스의 생산에 관한 학문이다. 게놈학 덕분에 생명은 제작되고, 상품화되고,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되고 거래될 수 있는 정보로 환원되는 물리적 사실로 표상된다. 1998년 아이슬란드 의회가 디코드 지네틱스라는 생명공학 회사에 아이슬란드 인구의 게놈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할 독점권을 넘겨줬을 때, 그리고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영국에서 보험회사가 개인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 때, 우리는 인간의 몸을 표상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어떤 경제적, 정치적 현실과 교차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그것들을 만들어 내는지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건강 수치들과 나란히 사망률, 출산율, 질병률, 평균수명, 인구 만명당 의사 수 및 병원 침대 수와 같은 지표들을 마주한다.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통계들은 개인이 아닌 민족국가라는 범주에 기초해서 등장한다. 이때 국가는 물리적인 지리적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 집단으로서의 인구와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조건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통계들은 곧바로 평균 수명 증가 및 출산율 저하에 따른 경제 활동 인구 감소 등의 경제적 현실로 이어진다. 이처럼 인간의 몸은 의학적 사실을 통해 확인되는 생물학적 개체라기보다는, 특정한 표상의 장치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임무를 부여받는 현실적 추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일상생활의 의료화란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가로지르는 표상의 질서가 형성되는 방식을 가리키기 위한 용어라 할 수 있다.
 

사회국가의 쇠퇴와 의료 민영화

  이전에 건강이란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환자란 건강을 잃은 이들에게 부여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제 건강이란 콜레스테롤과 혈압 관리를 비롯해 이런저런 일상적인 의학적 실천을 통해 개인이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개인들은 질병과 무관한 상태에서도 자신을 잠재적 환자로 간주하고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주체가 됐으며, 심지어는 지금보다 더 좋은 상태를 만들고 신체적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이는 의학, 생명공학, 유전학 등이 발달하면서 나타난 몸과 건강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자기-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임상의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유명한 농담이 있다.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 두 가지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데, 하나는 환자가 실험 도중 죽어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치료돼버리는 것이라는 농담이다. 제약회사에게 좋은 약이란 질병을 완전히 치료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만성화시킬 수 있는(그렇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약을 구입하도록 할 수 있는) 약이다. 여기서 질병은 치료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리돼야 하는 것이 된다. 이런 질병의 변화와 함께 건강에 대한 인식도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제약회사가 판매하는 것은 치료제가 아니라 리스크 자체이며, 건강을 관리하는 개인은 리스크를 관리하는 주체가 된다.

  리스크는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환원해 예측하고 감수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다. 사회복지국가에서 리스크는 국가를 통해 관리됐고, 개인들은 사회보장제도에 가입함으로써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리스크는 개인이 관리하고 떠맡아야 하는 것이 되며, 그 개인들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에서 책무성을 지닌 자로 명명된다. 건강을 관리하는 의학적 주체의 등장은 집단으로서의 인구라는 통치의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 자율과 책임을 추구하는 능동적 개인-시민이 산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영리병원의 도입, 의료 관광,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와 민간 의료보험의 확대 등과 같은 일련의 흐름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태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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