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문화
[시대를 感하다]개발독재 시대의 신파적 파시즘이호걸 / 부산외대 영상미디어학과 초빙교수
박지혜 기자  |  utois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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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승인 2012.09.25  22: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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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에 <쌀>(감독 신상옥)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의 앞부분에서 방황 끝에 낙향한 상이군인 용이가 맞닥뜨린 것은 지독한 빈곤이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고 싶다면 고향을 떠나라고 말한다. 눈물을 쏟아낸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은 남아서 마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그는 물길을 내기 위해 삽으로 돌산을 뚫는 무모한 도전에 돌입하게 된다. 눈물에는 확실히 고통을 위안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눈물의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소하는 실천을 추동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이듬해인 1964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일정 중에 그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한국인 광부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데,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돼 온 그 유명한 눈물이다. 이 눈물에 부여된 일차적 의미는 진정성 있는 공감과 위안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용이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이 눈물들 역시 그 시대의 슬로건이었던 ‘하면 된다’의 강력한 의지와 관련돼 있다.

  감정과 이성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이성적 사유와 행위는 언제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층위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층위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개인 간, 개인과 집단, 그리고 집단 간의 권력관계에 있어서도 감정은 중요한 비중과 역할을 가진다. 정치에서도 감정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정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상상적인 종족적 유대감에 기초하는 근대 민족주의 정치는 감정에 강하게 의존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와 깊이 연루돼 있는 파시즘 또한 마찬가지다.

  파시즘이란 단어의 사용에는 언제나 어려움이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파시즘으로 통칭되는 근대 이후의 정치적 억압과 동원의 여러 양상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 잘 정리된 정치 이념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럼에도 공유하는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르면 파시즘은 집단적인 억압과 동원을 중심으로 하는 20세기적 정치 운동이다. 그것은 자연과 의지를 중심으로 하는 생철학의 이념에 기반하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설득된 대중의 자발적 참여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그렇다면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지배 역시 파시즘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정치의 최종적인 수단은 폭력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정치에서 폭력은 설득과 회유에 그 자리를 상당 부분 내어줬다. 이 설득과 회유에는 언제나 감정적 국면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파시즘 또한 마찬가지다. 권위주의적 독재임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근대 정치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파시즘 정치 또한 여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선거의 형식을 통할 수밖에 없다. 파시즘은 이 과정에서 감정에 강하게 호소하는 경향을 가진다. 이성적이라면 쉽지 않을 설득과 회유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눈물의 파시즘적 포획

  그렇다면 박정희 시대의 파시즘 정치는 어떤 감정에 강하게 호소했던 것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가족의 위기가 만들어 내는 눈물이다. 이 가족은 가부장적인 것이므로 눈물의 특성, 특히 그것이 실천을 이끌어 내는 방식은 가부장적으로 젠더화된 것이다. 또한 이때의 가족은 실제의 개별가족들이기도 하지만 확장된 상징적 가족으로서의 민족이기도 했다. 파시즘 정권은 가족적 눈물을 자극함으로써 그것의 실천적 힘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 힘은 공과 사, 사회와 개인이 구별되지 않는 모든 것을 가족과 민족으로 수렴시키는 생의 강력한 의지에 다름 아니다.

  박정희가 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에 펴낸 책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의 대부분은 과거 한민족의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한 서술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의 첫 장에서 그는 “설움과 슬픔, 괴로움에 시달리던 이 민족의 앞길에는 반드시 갱생의 길이 있을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지배가 총칼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민족주의적 눈물에 호소하는 것은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었다. 또한 그 민족적 눈물이란 언제나 가족적 눈물로 은유되는 것이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눈물이 대중들 자신의 것이었다는 점이다. 저개발, 식민지배, 전쟁 등으로 인한 빈곤과 이산에 따른 고통스러운 경험의 누적은 가족적 위기감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감정 구조를 형성했다. 이러한 대중적 감정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대중문화이며 그 중에서도 극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식민지 시기 대중극과 영화는 가족적 위기에 따른 눈물의 정서로 점철됐다. 이는 종종 ‘신파’로 불리는 흐름의 중요한 속성을 이루곤 했다.

  이러한 흐름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1960-70년대이다. 이 시기 대중문화의 장에는 신파적 눈물이 넘쳐났다. 당시 만들어진 영화의 태반은 가족의 위기에 따른 눈물을 담고 있었다. 이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 멜로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성의 장르인 액션영화 또한 가족의 침탈에 피눈물을 흘리는 남성영웅들을 등장시킨다. 물론 그 눈물은 그들의 초인적인 복수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시기 대중들은 확실히 ‘신파적 감정 구조’라 할 수 있는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파시즘 정치는 바로 이것을 포획했던 것이다.

  이 시기는 근대 이후 한국인들의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경험에서 가족적 고통이 극단에 달했던 시점이다. 이 시기에 만개하기 시작했던 대중문화는 이 고통을 강하고도 섬세하게 재현해 냈다. 이것이 바로 이 시기에 신파적 눈물이 넘쳐났던 일차적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다른 힘도 작용하고 있었다. 눈물의 파시즘적 포획이 그것이다. 위기의 상상이 부추겨졌고, 고통은 과장됐으며, 눈물이 예찬됐다. 그리고 이는 파시즘 정권의 통제와 동원을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정치는 신파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포획된 눈물에서 ‘코나투스’로

  신파가 파시즘 정치와 접속하는 과정은 대중, 정치, 감정의 문제와 관련해 몇 가지의 중요한 시사점들을 제기한다. 첫째, 근대 정치에서 대중적인 것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포획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대중에 대한 지배의 원동력은 언제나 대중 자체의 것이다. 둘째, 정치에서 감정의 힘을 보여준다. 정치를 합리적 판단, 토론, 결정의 영역으로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합리성의 근저에는 언제나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장은 이성적으로 매개되지 않는 원초적 감정들로 언제나 넘쳐나게 마련이다. 눈물 없는 정치란 없다.

  그러므로 신파적 눈물의 정치화 자체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정당하지는 않다. 이는 포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포획은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므로 신파적 눈물을 흘리는 파시스트는 언제나 이중의 포획에 놓여 있다. 첫 번째는 가족이며, 두 번째는 그것에 기초한 민족국가이다. 부추겨진 눈물이라는 점도 문제다. 눈물은 존재의 상태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흘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고통을 과장해서 느끼는 것은 결코 존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모두 그러하다.

  그렇다면 신파의 정치적 정당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눈물의 가장 원초적인 국면에서 찾을 수 있다.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어떤 성향, 즉 눈물을 흘리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코나투스’가 바로 그것이다. 개체이건 무리이건 이는 언제나 존재의 기반이 된다. 정치란 결국 개인과 사회의 코나투스적 흐름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좋은 정치란 언제나 좋은 삶을 위한 것, 즉 양생의 정치일 수밖에 없다. 확실히 눈물보다는 웃음이 좋다. 눈물은 존재의 나쁜 상태에서 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물 또한 보다 좋은 상태에 이르기 위한 코나투스의 작용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파시즘 비판은 그것에 대한 대중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이는 대중의 자기성찰을 요청한다는 점에서는 정당하지만, 과도한 이성주의와 엘리트주의적 편향이 감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신파적 파시즘에 대한 비판 역시 같은 식이라면 곤란하다. 정치적 감정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대중이 아니라 다른 능동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그 집합적 주체의 잠재적인 정치적 역능을 놓치지 않는 관점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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