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은 이전의 전쟁보다 훨씬 더 정교해진 심리적 수단과 이미지 조절의 기술을 사용한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이라크군은 맞아서 얼굴이 붓고 상처가 난 겁에 질린 미군과 영국군 포로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이는 잔혹성을 이용해 적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키기 위한 행위다. 이로써 이미지의 잔혹성을 통제했던 이전의 전쟁과는 달리, 이라크 전쟁은 이미지의 잔혹성을 전략적으로 조절하면서 활용한 최초의 전쟁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초 미군은 시체가 보이는 사진의 배포를 금지시켰으나 나중에는 정책을 바꿔 국민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시체 사진을 이용했다. 이렇듯 진실의 조정은 전쟁의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더욱 치밀한 성격을 띤다.

 
 


  잔혹의 효용은 무엇인가. 잔혹한 이미지는 트라우마적 이미지이며, 따라서 해석이나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롤랑 바르트는 이에 대해 기호학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트라우마는 언어의 정지이며 의미의 봉쇄이다. (중략) 충격사진은(재난, 난폭한 죽음, 화재 등) 구조상 의미가 있을 수 없다. 어떤 가치, 어떤 지식, 어떤 언어적 범주화도 의미작용을 담아낼 수가 없다. 트라우마가 직접적일수록 그에 대해 함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더 힘들다”. 잔혹한 이미지들이 효과를 가지는 것은 바로 ‘언어화할 수 없음=성찰할 수 없음’ 때문이다. 폭력적 이미지는 보는 이에게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들며, 전쟁은 판단의 영역 너머로 도망가고 만다.

 
  바로 이 지점이 끔찍하고 비참한 것이다. 수잔 손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돼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며 갖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한다”고. 
 

 

한경은 편집위원 | femiwalk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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