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섭 / 이보섭융연구소 소장

<우리 민담으로 읽는 분석심리학>
 
 
  옛날에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 토끼를 발견하고 쫓아가던 중에, 웬 노루가 나타나자 노루를 따라 동굴로 가게 됐다. 동굴 안에 여러 갈래의 길을 더듬으면서 들어가니 햇빛이 비치는 이상한 세계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만난 90세 노인의 안내로 도달한 곳은 잔칫집이었다. 무슨 잔치냐고 묻자 노인은 “이곳에서는 매일이 잔칫날이며 온갖 농작물이 저절로 자랍니다”라고 했다. 나무꾼이 “우리 식구도 여기 와서 살아도 되느냐”고 묻자 노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우리 선조께서 돌아가실 즈음, 아무도 피해를 받지 않고 살기 위해 이리로 피신 왔는데… 오고 싶으면 오시오”라고 대답했다. 나무꾼은 다시 찾아오기 위해 노인에게 콩 세 말을 얻어 산길에 뿌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식구들을 데리고 다시 산속으로 찾아가는데 중턱쯤부터 짐승들이 먹어버렸는지 콩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지혜로운 우리 옛날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나라는 마음씨 나쁜 사람은 못 들어가는 곳이란다”. 


  이 민담은 동굴 속에서 펼쳐지는 빛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노인이 선조의 예를 든 것과 같이 세상의 화를 피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 선조는 분석심리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기존 가치체계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자연적으로 무너졌건, 억울하게 무시됐건 간에 이때는 혼란이 야기된다. 새로운 질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억울함을 풀기 위한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이때 동굴로 피신한다는 것은 완전한 내향화의 길을 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자아가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 하거나 다른 자아와 충돌하기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면에 집중해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무의식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나무꾼의 경우와 같이 자아가 원래 의도한 일을 멈추고 우연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토끼를 쫓다가 우연히 만난 노루를 따라간다. 유교에서 토끼는 민첩한 특성 때문에 심부름꾼이나 전령의 역할을 한다. 도교에서는 달에 살면서 떡을 찧거나 불사약을 만드는 영물로 ‘장생불사’를 상징한다. 신화에서 노루는 천상의 비밀을 아는 신비한 동물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에서도 노루가 나무꾼에게 천상의 세 선녀가 내려오는 연못을 알려준다. 이는 한 인간이 나무꾼의 일상, 즉 의식적인 생활을 떠나 무의식에서 온 안내자를 따라 집단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에 해당한다. 


  집단무의식의 세계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자연의 세계이다. 위의 경우에서는 인위를 멈추고 무위의 태도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할 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일 매일이 잔칫날과 같이 풍성하고 기쁨이 충만하며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세계는 불교의 동굴 명상수행이나 기독교의 영성수련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체험이 외부의 활동을 잠시 멈추고 꿈 분석이나 적극적 명상처럼 내면을 돌보는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동굴에서의 암중모색은 여기에 해당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선한 마음, 즉 자아의 이기심과 욕심이 없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이것이 민담 끝에 덧붙여진 할머니 말씀의 진정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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