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 변화의 바람을 타는가 / 김석수

보수주의는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며 현재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로써, 보수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 정치세력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좁은 의미에서 현재 집권세력은 보수주의자들이며, 넓은 의미에서 보수 양당이 한국의 정치를 이끌어간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보수주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질의응답은 서면으로 진행)



 
 
● 김석수
시사평론가. 전 창조한국당 대변인. 정치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불교방송 <김석수의 아침저널> 진행을 맡았으며, 인터넷신문 <데일리 서프라이즈> 편집위원을 지냈다.


 

 

 

 

Q/ 우선 한국 보수주의에 관해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는지 궁금하다. 보수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까.
A/ 공자 말씀에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말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공자의 치국 목표였다. 이 표현엔 정치란 온갖 권모술수와 음모가 판치는 ‘삼국지’ 같은 것이 아니라, 굽은 것을 똑바로 펴는 것이란 뜻을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일그러진 말의 역사를 가진 한국 보수도 다르지 않다. 한국 보수는 보수주의의 개념들을 배척해 왔다. 대표적인 보수 가치인 ‘민족주의’와 ‘시장경제’는 보수세력이 탄압해 온 가치다. ‘우리민족끼리’보다 친미를 택했다. 시장경제보다 계획경제로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다. 이것은 확실히 서구의 보수 가치와 다르다.

Q/ 서구의 보수 개념으로는 한국의 보수주의와 그 정치세력을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말인가?
A/ 사실 보수와 진보라는 ‘사후적 가치’가 인간의 삶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다 보니 일정한 개념이 생겨나고, 이것을 관념으로 체계화하다 보니 ‘보수’나 ‘진보’라는 사후적 가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사람들의 ‘삶이 우선’이고 ‘이념은 나중’이기에 기존에 확립된 가치가 절대선일 수 없다. 따라서 삶이 변하면 가치도 달라진다.
   20세기까지 보수와 진보는 마르크스의 영향에 근거한다.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른 계급과 그 계급에 대한 충성도를 중심으로 보혁을 갈라왔다. 그래서 프랑스대혁명 당시 진보였던 부르주아가 하루 아침에 보수가 됐고 프롤레타리아에게 진보의 자리를 뺏겼다. 그리고 20세기 냉전시대까지 이 흐름은 이어졌다. 아울러 마르크스적 기준에 따른 기존의 범세계적인 보수 흐름은 80년대 만들어진 신자유주의의 창궐과 지금의 소멸적 흐름, 그리고 사회주의 중국의 생산력 증대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Q/ 보수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현재 한국의 보수주의 정치세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A/ 한국의 보수는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보수가 변하는 것은 생존 때문이다. 양극화를 불러온 신자유주의 대신 이를 해소할 복지, 경제민주화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명박 정권이 ‘뉴라이트’였다면 분열적 남북관계를 만들어 기득권을 유지해 온 ‘올드라이트’와 달리 햇볕정책을 발전시켜야 했다. 그러나 ‘뉴라이트’인 이명박은 남북관계 설정에서 실패했고 ‘올드라이트’를 기반으로 하는 박근혜는 남북대화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수가 달라진 것은 정치적 환경이 변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과 세계적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분열적 구도를 통한 기득권 유지는 사실 후진국적인 현상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치적 통합력은 높아진다. 국민 에너지를 소모적인 곳이 아니라 생산적인 곳으로 쏟아부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 내부 분열을 통한 기득권 유지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Q/ 국민통합이 현재 한국 보수주의 정치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고 보는 것인가?
A/ 보수의 이런 담대한 변화는 돌발적이긴 하나 실은 안철수로 인한 것이다. 여권과 야권, 진보와 보수, 영남과 호남의 대립 구도가 ‘상식이 힘’이라는 강력한 중간지대의 대표자인 안철수의 등장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것을 재빠르게 간파한 것이 박근혜 캠프다. 야권의 대립각인 박근혜가 청년층과의 소통으로 국민통합형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안철수에 비해 비교열위에 놓이고, 따라서 특정진영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가 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그래서 재벌개혁론자와 경제민주화론자들을 당의 비대위원으로 위촉해서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들을 한꺼번에 정리하고 있다. 지역통합과 계층통합, 그리고 세대통합의 주도권을 쥐는 싸움 구도가 박근혜와 야권이 아니라 박근혜와 안철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Q/ 안철수의 등장만으로 보수주의 정치세력의 변화를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 국민통합이라는 의제가 떠오른 이유를 좀 더 거시적인 차원으로 파악하자면?
A/ 경제적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강국 영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사회주의 중국과 아시아가 떠오르고 있다. 유럽에서 잘되는 나라들은 스위스나 북유럽의 스웨덴 같은 나라인데, 이들은 강력한 자치제를 근간으로 해서 국민통합력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도 오래 전에 실시한 나라다.
   신자유주의 등장과 현실사회주의가 패망한 이후, WTO와 FTA를 앞세운 쌍무적 협약과 다자간 논의 구조가 이념과 계급전선을 대체하면서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질서가 등장했다. 자본주의 진영을 돌보기 위해 특혜적 시장개방을 해온 미국 등도 이젠 ‘우리도 먹고 살자’며 약소국에 노골적인 시장개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강력한 지적재산권 역량 등을 중심으로 배타적인 독점이윤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념이나 형제국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이익이 최우선인 세계질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보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분열적 지도력보다는 통합적 지도력으로 정치역량을 과시해야 한다. 빨갱이 사냥이 아니라 진보적 복지테제를 수입해서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독일을 통일하고 자본주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인류 최초의 복지정책을 입안한 비스마르크처럼.

Q/ 보수주의 정치세력이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한 것은 ‘보수는 수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가 ‘수구’가 되면 나라가 망하지만 보수가 유연해지면 나라는 흥한다. 진보세력과의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진다. 그만큼 국민통합력은 높아진다. 한국적 상황에서 진보나 좌파들은 곧잘 말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맞는 말이긴 하나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신변보장용 명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 진보나 좌파의 안타까움은 박근혜와 안철수가 허물고 있는 ‘기존의’ 진보와 보수 구도를 전혀 허물지 못하고 과거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가장 큰 정치권력을 두고 박근혜와 안철수가 시소게임을 벌이는 이유다.
 

정리 박효진 편집위원 | russell05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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