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하 / 진보신당 기획실 국장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신자유주의가 이제 황혼기를 맞이하는 모양이다. 연이은 국가적 재정위기로 지금까지 주요 선진국들의 교리였던 ‘작은 정부’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정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와 함께 정치 영역에서도 ‘보수적’이라고 평가됐던 세력이 후퇴하고 있는 양상이다. 도대체 보수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정치적 영역에서 보수주의는 지배계급의 사상을 의미한다. 보수주의의 기원은 프랑스혁명 이후의 자유주의다. 이는 소위 시민계급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상인데, 시민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적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영역에서 보수주의는 작은 정부로 요약되는 정부 개입의 최소화와 재정 긴축, 복지 축소 등으로 명명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시민계급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상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시민계급은 왕정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어 했으며, 축적한 부를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의 경제적 보수주의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를 이렇게 이해하면 결국 보수주의는 지배계급이 가지는 어떤 신념과 태도가 국가적 통치의 수단으로 구현된 결과물로 생각된다. 그런데 왜 시민계급 고유의 이런 신념과 태도가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인가?


보수주의에게 무슨 일이?


  이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국가들에서 보수주의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닥친 위기는 무엇인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사태를 통해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은 부시 정권 기간 동안 자처해 왔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 역할을 버리고 ‘양적완화’라는 공적자금의 무제한적 투입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에게는 기축통화국의 지위와 미국채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위력적인 수단을 갖고 있었던 터라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2008년 말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됐다는 점이다. 보수주의를 대표했던 공화당 부시 정권이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면서 등장한 오바마 정권은 대중의 광범위한 기대를 등에 업고 어떤 새로운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선진국들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던 금융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불행히도 오바마 정권이 쓸 수 있는 대응책이란 부시 정권에서도 똑같이 득세했던 주류경제학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무제한적 유동성 공급이 당장의 위기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정부 재정의 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볼멘소리가 높아지면서 또 다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재정균형과 감세, 작은 정부가 대안인 양 주장하는 인사들이 나타나게 됐다. 이것은 마치 통화주의자들과 케인스주의자들이 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핑퐁게임을 벌이면서 영원히 대립하고 있는 상황과 같다. 확장정책의 지지자들이 실각하면 긴축의 전도사들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할 것이고, 긴축정책이 파산 선고를 받으면 다시 확장정책의 집행자인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재정위기로 존폐 위기에 놓인 유로존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로존의 기본 원리는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역할을 유로존에서 독일이 맡도록 설계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독일의 마르크화가 유로존 내에서는 일종의 기축통화로서 기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유로존 내에서 독일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느냐를 따져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의 미국은 위기가 닥쳤을 때 케인스주의적 정책의 시행을 용인하는, 사실상 초국적 케인스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 체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오히려 유로존 내에서 통화주의자들의 대부 역할을 자임했는데, 이는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해당 국가에 긴축과 균형재정, 통화확장정책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이러한 신념은 1981년에 집권해 확장정책을 밀어붙였던 프랑스 미테랑 정부와의 정면충돌을 야기해 결국 프랑스로 하여금 확장정책을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결국 이 사건은 프랑스 좌파들의 정책적 우경화를 촉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돼 2007년에 사르코지 정권의 탄생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충돌은 현재에도 나타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긴축과 균형재정을 달성하지 않으면 위기 국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독일의 입장은 유로존 안에서 다수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우파들이 실각하고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논쟁의 구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독일을 필두로 현재와 같은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측과 유로본드 발행, ECB 역할 증대, ESM 은행면허 부여 등의 적극적 역할을 유로존이 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는 형국이 된 것이다. 즉 유로존이 긴축정책을 각국에 강요하는 심판 역할에만 국한될지, 아니면 공동으로 위기를 타개할 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할지에 대해 각국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역시 가장 난감한 것은 독일이다. 사실상 유로존의 기축통화국으로서 채무 부담을 가장 많이 떠안는 역할을 요구 받고 있으나, 이들이 미국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한국 역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처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용의 차이는 있으나 경제민주화라는 슬로건을 모든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게 됐다. 이는 이명박 정권이 재벌 친화적 경제정책을 통해 기득권 수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정말로 다른 정권과 대비되는 수준의 재벌친화적 정책을 펼쳤는가는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재벌친화적 경제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고환율 정책’의 경우 재벌에 특혜를 주기 위한 정책이었다기보다는 한국 경제정책의 오랜 대립 구도였던 성장과 안정의 기로에서 ‘모피아’로 불리는 재무부 출신들의 성장주의자들이 정책의 주도권을 잡은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 인사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은 주권’이라며 물가를 포기하더라도 경상수지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문제는 이를 둘러싼 논쟁 역시 ‘국가가 돈을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고환율 정책의 반대자들은 인위적 환율 조작 등의 부작용을 거론하며 물가 관리를 위해서라도 국가의 환율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통치라는 차원에서 보면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환율 개입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환율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주문은 오히려 국가가 돈을 적게 써야 한다는 긴축정책과 통화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경제민주화에 관한 논의는 그 주체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특정한 정책을 지지하는 관료집단에 정치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검토한 사례들을 보면 결국 보수주의의 위기는 대항 이데올로기로서 시작된 이념이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이 됐을 때, 체제의 위기를 겪으면서 갖게 되는 필연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역시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는 위기의 성격이다. 보수주의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위기의 성격은 결국 시민계급이 만든 체제인 자본주의의 위기일 것이다. 지금 그들의 위기를 재현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의 정체성이자 브랜드인 셈이다. 또한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공유하는 우파 대 반 우파라는 ‘공모자들’의 구도이다. 이제 확장과 긴축의 핑퐁게임과 이에 만족하지 않는 유럽 극우주의 정당의 성장 등은 그야말로 ‘낡은 것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은’ 위기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바야흐로 이런 통찰마저도 좌파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가 도래하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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