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현 / 청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른바 ‘한국의 주류 보수’는 과연 북한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칠게 도식화하면 다음의 두 가지 선택지로 요약될 수 있다. 남북한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분단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제와 관련해 진정성이 담보된 열린 논의와 민주적 합의 과정을 통한 민족통합을 이룸에 있어 대등한 민족적 동반자이자 상호 협력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국내 정치적 현실과 연관 지어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해관계의 관철을 위해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처럼 의도적으로 조성된 양자택일적 문제 상황에서, 남한 주류 보수의 북한관은 어느 쪽에 근접하고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잠정적인 해답은 후자에 기울어져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해방과 분단 이후 이제껏 남한의 주류 보수가 보여준 통일 및 북한에 관한 다양한 행태를 경험적·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드러난다.

 

변신의 귀재

알다시피 해방과 맞물려 빚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전쟁은 남북한 사이의 적대적 대립 관계를 한층 심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데는 해방 이후 친일민족반역자집단을 민족과 역사, 그리고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척결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가 깊이 연루돼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 주류 보수의 ‘원조’라 칭할 수 있는 두 세력, 즉 철저히 단죄되지 못한 남한 내 친일 반민족 세력과 그들을 처단하는 대신 취약한 통치 권력의 지지 기반으로 삼은 권력추수적인 반민족 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두 세력은 자신들의 원죄를 은폐하고자 ‘반공투사’로 변신했으며, 생존 및 기득권 유지 전략의 일환으로 분단 구도를 고착화하는 동시에 국가 안보를 전면에 내건 강력한 반공주의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민족반역세력이 주축이 된 반민주적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그들을 북한체제와 연결 지어 한통속으로 몰아가는 것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류 보수는 자신들의 행태에 분노해 투쟁하는 민주·민주세력들을 북한이 사주하는 불순한 체제 전복 집단, 혹은 빨갱이의 소행으로 매도해 가혹한 탄압을 자행했다.

이처럼 한국의 주류 보수는 자신들의 친일 행각을 반공으로 희석시키며 자칭 ‘건국세력’으로 부활한 뒤 스스로 통치 권력을 구축하거나 독재 권력과 야합해 남한 내 지배세력으로 군림해 왔다. 이를 통해 한민족 전체의 행복과 이익을 염두에 두고 분단 구도를 타파하고자 진력하기보다는 분단과 대립의 논리를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입시켰으며, 북한을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하기보다는 타도와 배척의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의식화시켰다. 모든 반통일적·반민족적 사태의 원인은 전적으로 ‘악마적 체제’인 북한에 있다는 논리를 펼치며 남한의 주류 보수는 마치 자신들만이 통일 주도적 민족주의 세력인 양 호도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속성과 작태를 철저히 숨겼던 것이다. 이는 과거 유신체제와 군사독재정권에서 지배세력으로 군림했던 주류 보수가 겉으로는 민족통일을 수없이 주창하면서도 내적으로는 분단체제를 악용하거나 반공과 안보주의, 그리고 국가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변용해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고 ‘반통일적’ 정권의 안정적 유지를 도모함으로써 한반도의 분단 구도를 항구화했던 역사적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남한 주류 보수의 시각에서 북한은 상호 공존과 발전의 주체가 아닌, 필요에 따라 수단으로 활용되는 존재이자 궁극적으로는 해체와 붕괴의 대상일 뿐이다. 이를 상기하면 반세기에 걸쳐 구축된 남북 간 적대관계를 평화적 공존관계로 전환하고자 진보 정권이 추진했던 ‘햇볕정책’에 주류 보수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대목도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주류 보수에게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은 분단체제에서 자신들이 누렸던 부당한 특혜와 정치적 입지가 와해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비판과 반성의 10년, 그러나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주류 보수 내에서 자기비판적 성찰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그들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린,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통치 기간 동안 주류 보수 내에서는 나름대로 치열한 자기비판과 자기반성의 시간이 있었다. 이는 주류 보수 진영에서 쏟아져 나온 ‘진전된 보수’로의 전환에 관한 다양한 반성적 견해와 입장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통치권을 진보 진영에게 넘겨준 충격으로 인해 일부의 주류 보수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자기비판적 성찰을 하며 보다 이성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을 감행했다. 대표적인 예로 기존 수구 기득권 세력과의 단절을 내세우면서 변화된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는, 보다 개선되고 합리적인 형태로 보수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했던 ‘뉴라이트’를 들 수 있다. 이들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된 데는 무엇보다 “기존의 우파가 빨갱이 타령으로 먹고 살았다면 우리는 그러한 낡음을 털어내고 제대로 된 우파 정신을 조직하자”는 자기혁신적 선언이 적잖이 작용했다.

하지만 보다 진전되고 합리적인 성향의 성찰적 보수로서 일신 가능성을 보여줬던 뉴라이트가 MB정권의 등장 이래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뉴라이트는 MB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핵심적 이념 집단이다. 하지만 그러한 뉴라이트와 그들에 의해 인도된 주류 보수는 갖가지 반민족적·반통일적 행태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가령 그들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민족해방의 관점’에서 약탈적 강점과 야만적 수탈 통치로 보는 대신, ‘제국주의의 시각’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해준 근대화 과정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를 ‘민족지상주의’와 동일시한 상태에서 민족의 이익이나 민족 개념 자체를 부정하면서 민족통일의 이념적 의의나 민족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작용하는 북한의 의미는 철저히 무시해 버리고 있다. 요컨대 뉴라이트와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주류 보수에게 남북한의 평화 공존이나 민족통일은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에서, 아울러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주류 보수의 사적 이익을 증대시키는 한에서만 고려될 뿐이다. 반면 걸림돌이 되는 경우 민족이나 통일, 그리고 북한은 아예 논의의 대상에도 끼지 못한다. 그로 인한 현실적 결과는 MB정권에서 이뤄진 북한과의 대화 단절, 신냉전적 대북정책의 전개, 공세적·적대적 대북관계로의 급선회, 외세의존적이고 반민족적인 남북 대결 구도의 재구축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라이트가 주도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주류 보수는, ‘돈의 논리’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또는 철학적인 정당화 논리조차 갖추지 못한 정체불명의 경박한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북한을 하나의 상품이자 조작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영토 문제를 비롯한 치열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 동북아 정세 속에서도 이 땅의 주류 보수에게 민족의 운명과 이익, 그리고 생존과 발전은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 보수의 대북관이 보다 민주적이며 열린 민족주의적 관점에 기초한 상호인정 및 존중적인 대북관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개종에 버금가는 전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 ‘수구 반동’으로 변질된 주류 보수가 스스로 그릇된 이념의 굴레로부터 빠져 나와야만 한다. 허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주류 보수 내의 일부 자각적인 소수가 주도하는 치열한 자기반성과 비판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주류 보수가 분단 구도에 기대어 이제껏 누려온 기득권을 내놓지 않는 한, 그러한 비판과 반성은 관념적·추상적 차원에 머물 공산이 크다. 그동안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민족을 배반하고 남북 대결 구도를 심화하며 분단체제를 항구화해 한국 사회 곳곳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진력했던 주류 보수가 자신들이 자행한 부정적 행태와 전면적으로 단절하고 성찰적 보수로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자신들의 지배 권력과 기득권을 총체적으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로 유감스럽지만 이것이 현재 한국의 주류 보수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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