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제 MB정권도 저물어 가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대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5년은 민주주의적 가치와 믿음에 대한 쇠락,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만연과 동시적 실패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는 진보, 보수가 공히 보여준 무능과 국민에 대한 무시의 결과이기도 하다. 


  우선 남성중심주의는 보수주의 담론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적 관계를 전제하고, 여성을 이분화(보호해야 할 여성-어머니·아내·딸 / 보호 밖의 여성-창녀·놀 때 만나는 여자)하는 한국사회의 성문화는 기존의 남성중심적 사회질서, 공·사 이분법, 젠더 역할 분리라는 명백히 보수적이며 퇴행적인 담론에 근거한다. 그러한 담론은 관습적 실천 양식을 구성하고, 그러한 행위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예를 들어 ‘이쁨’과 ‘어림’ 중 하나가 ‘여자’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때, ‘이쁜 것’과 ‘어린 것’은 취약함과 연결된다. 이는 착취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발판이 된다. 이때 권력의 우위에 있는 남성들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취약한 자에게 배출하고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아무런 죄책감이나 불편함이 없이 ‘여성’을 택한다. 그리고 그 ‘여성’은 집에 있는 ‘여성’과 다른 ‘여성’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떤 ‘여성’은 남성들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성적 폭력과 착취의 구조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둘째, 신자유주의·자본주의 논리는 보수주의 담론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모든 것이 경쟁과 가시적 성과로 판가름되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는 경쟁에서 뒤쳐진 개별적 무능력자, 루저일 뿐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 제기는 공허한 추상적 담론에 그치고 약자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적 자선행위로만 가늠된다. 이때 여성은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성차별의 문제 또한 경쟁력 향상과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만 이해된다. 손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산업예비군이거나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가족 재생산의 모태인 것이다.
 

  셋째, 자민족 중심주의·배타적 민족주의는 보수주의 담론과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 미국으로 대변되는 ‘제국주의’나 일본으로 대변되는 ‘식민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자민족중심적인 민족주의’는 국가 재건 과정에서 혹은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일정부분 저항담론으로 활용됐다. 이로 인해 내부에 존재하는 성별, 계층, 성 등에 관한 다양한 문제의식이 민족 문제의 뒷전으로 밀렸지만 실제로 한국사회는 일제식민지의 잔재를 말끔히 해소하지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견지하되 동시에 숭미, 친미 등과 작위적으로 결탁하면서 집단적 이익을 위해 다양성과 차이를 억제하거나 배제하는 실천 양식은 명백히 보수주의라 지칭할 만하다. 이런 지배적 담론 구조에서 ‘16살에 포악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처녀’는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민족의 기표가 될 수 있지만, ‘양놈에게 몸을 버린 더러운 양공주’는 무의식 속에 감춰져야 한다. 이로부터 미디어에 볼거리로만 등장하는 다양한 인종의 섹슈얼리티나 한국민의 혈통을 이어주며 몸으로만 존재하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무화된 채,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식 가부장 가족제도와 ‘한민족’에 일방적으로 편입되길 강요하는 현재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보수주의적 담론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동원되거나 착취되는 몸으로만 존재하기 쉽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박정희 정권 때 기생관광과 기지촌 문제, 전두환 정권 당시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성매매 구조가 대표적인 예다. 이 ‘특수’한 예들은 실질적으로 ‘일반’ 여성 모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 ‘여성’과 이 ‘여성’은 다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공동체와 약자에 대한 감수성, 기본적인 인권 의식도 없이 기득권의 이해관계에만 복무하는 보수란 반여성, 반인권적이며 수구집단에 불과하다. 과연 정의로운 보수담론이 가능한가? 친여성적이며 친인권적인 보수담론이 존재할 수 있는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스스로의 위치에서 일상의 언행들을 성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보수의 덫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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