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미 / 사회학과 박사수료

 
 

시대의 전환을 가져온 혁명은 프로이트의 부친 살해 모티프에 비유된다. 서구 산업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중국과 체코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포함하는 의미에서 68혁명 역시 모든 저항과 궐기는 그들을 억압하는 아버지의 목을 베고, 이름 없는 자들의 산 노동의 값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부친 살해의 모티프를 들어 68혁명을 간단히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야기할 것은 저 아버지의 형상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이다.

어느 술자리에서 존경하던 선생의 한탄을 듣는다. “왜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고 참고 있느냐?”라고 젊은이들에게 그가 묻고, “살해할 아버지가 없다”고 우리가 답했다. 억압과 저항이 극명하던 시기에는 늘 아버지의 형상이 충만했다. 생물학적 아버지의 억압은 물론이요, 국가의 폭력, 냉전과 제국의 헤게모니, 세상 모든 아버지의 자리를 은유하는 팔루스의 견고한 위치까지 말이다. 저항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달려들어 얻어터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아버지에게 달려들 기회가 많지 않다. 명확한 아버지의 형상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부모는 나를 때려주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고 협상하며, 누구도 내게 무엇을 하라 명령하지 않기 때문에 무궁한 자기계발이 최선이다. 국가는 형사처벌보다 민사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고하고, 자본주의는 이제 저항의 아이콘들까지 모두 자신의 상품에 입혀 저항을 원하는 자들에게 쿨하게 팔아넘긴다. 386세대는 자신들이 민주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민주화가 아닌 새로운 자유주의의 시대로 넘어왔을 뿐인데 말이다. 자본주의는 이전보다 더 영악하게 형상 없는 아버지로 산재하며 우리가 간절히 호명을 원하고, 착취해 주기를 원할 때까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저항과 다문화는 주류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이 됐다. 이 유연하고도 견고한 체제를 개혁하려면 우리는 어떤 아버지부터 살해해야 하는가? 이 답을 과연 68혁명에서 찾을 수 있을까?

길혀홀타이는 1968년을 29개의 무대 장면이 하나의 꼴라주로 모이는 역사적 설명방식으로 68혁명을 그려내고 있다. 권력 없는 주체에 의한 권력 전복이 정치적 의미로서의 혁명이라면 68은 무엇을 전복했는가? 심지어 68이 어떻게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한 코드가 됐는가에 대한 정치한 분석들이 출몰하는 지금, 우리는 68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지난한 문제들로 빠져들기 전에 우리는 68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대략의 상부터 필요할 것이다. 길혀홀타이는 1968년 1월 말 베트콩 구정공세에서 1969년 1월 런던과 프랑크푸르트의 대학점거까지를 활동가와 사건들의 상호연관성을 보여주며 당시의 시대상을 적절히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방식은 1968년을 전후로 일어났던 당시 세계의 혁명적 정세를 보여주기에 좋은 방식이다. 특히 68혁명의 참여자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어떻게 연대했는지 볼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하는 새로운 어떤 것을 위해 과감히 실천했던 이들의 에너지를 바로 읽어낼 수 있다.

1968년에는 냉전이라는 국제정세와 아직 황혼으로 저물지 않은 사회주의의 열망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분명 억압의 모든 징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폭력의 희생자와 연대하며, 항상 고통 받는 소수자 편에 서야 한다는 정신으로 무장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명확히 아버지를 살해했는가 하는 것은 아직 의문이다. 또한 지금 우리를 억압하는 아버지는 그때와 형상만 다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체계인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세계 속에 처한 자신의 위치와 다른 모든 것들의 위치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자리에 다른 아버지를 들이지 말라. 또 다른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아버지를 몰아낼 수 없다. 그저 무기(無記)의 영역에 잠들어 있던 인간의 언어와 산 노동으로 그 자리를 풍요롭게 해야 할 것이다. 당장 아버지의 형상을 찾아 살해하기가 어렵다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버려진 말들과 산 노동을 다시 주워 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계를 점거할 때까지 모든 것을 점거하고, 희망이라는 탕녀에게 희롱당하지 않도록 절망의 자리마저도 모두 점거해야 할 것이다. 저들이 아버지 없는 자들을 두려워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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