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묵 / 음악평론가



  질베르토 질(Gilberto Gil)
  질베르토 질(Gilberto Gil)


  예술작품은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시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보다 직접적이다. 시가 문자 상태에 있다가 노래가 되면 그 파급력은 증폭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흥얼거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정권은 시인과 음악가들을 탄압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경계의 대상이 됐다. 

  1964년, 브라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젊은이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가수인 질베르토 질과 카이타누 벨로조의 주도로 시인, 화가, 극작가, 영화감독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했다. 이들을 구심점으로 브라질의 문화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군사독재 정권에 대응하는 예술가들의 움직임이었다. 음악을 선두로 시, 미술, 영화 같은 예술들이 사회 비판적 요소를 담기 시작했다. 이들은 브라질의 정체성과 예술을 새롭게 규정지으려 했다. 이 운동은 1967년부터 1972년까지 5년간 활발히 전개됐다. 이를 ‘트로피칼리아’ 혹은 ‘트로피칼리즈모’라고 한다. 이 운동은 브라질은 바꾼 계기가 됐다.

  질베르토 질은 로큰롤의 젊은 기운에 주목했다. 그것은 ‘청춘의 언어’였다. 밥 딜런, 비틀즈, 롤링 스톤즈 같은 서구 젊은이들의 기운을 보사노바, 삼바 같은 브라질 음악에 접목했다. 로큰롤, 사이키델릭, 포크 록 등 서구의 록 음악이 브라질 풍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로써 청년들과의 연대가 쉽게 이루어졌다. 이 음악은 'MPB'(에미페베, Musica Popular Brasileira)라는 커다란 흐름을 이룬다. 질베르토 질, 카이타누 벨로조, 마리아 베타니아, 시쿠 부아르키, 미우통 나시멘투 등 여러 가수들이 MPB를 통해 국민에게 자유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은 시적인 은유와 상징으로 군부를 비판했다. MPB는 '브라질 대중음악'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한 음악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국민을 결속시키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군부 역시 이를 두고 볼 리 만무했다. 독재 정권은 1968년 12월에 우리나라 유신시대 ‘긴급조치’와 비슷한 ‘법령 5호’를 발동했다. 많은 음악인들이 투옥, 추방, 가택연금 같은 고초를 겪었다. 질베르토 질과 카이타누 벨로조를 비롯한 음악인들이 체포됐다. 군부는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만약 음악을 하고 싶으면 외국으로 나가서 하라’고 했다. 6개월간의 투옥 후에 이들은 런던으로 망명한다. 이들은 유럽을 돌면서 브라질 군부를 규탄하는 노래를 불렀다. 

  1972년 브라질로 돌아온 질베르토 질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브라질의 문화부장관을 맡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내 직분은 ‘다리’입니다. 이데올로기, 사람, 종교, 시대 흐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내 인생입니다.”

  문화는 역사가 낳는 것. 브라질 문화는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생겨났다. 브라질 원주민(인디오), 유럽에서 온 이민자(스페인, 포르투갈 계통), 흑인 노예들로 이루어진 혼합 문화에 서구의 록 음악이 융합된 음악이 트로피칼리아란 이름으로 태어난다. 트로피칼리아란 과거와 현대가 어울린 현재진행형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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