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혜경 / 제주대 SSK 전임연구원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 한국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론 중의 하나는 ‘기억’에 대한 문제였다. 이 기간 동안 ‘기억’이론만큼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은 이론도 없었다. 한국의 ‘기억’ 논의는 국가권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으며, 과거 국가폭력을 드러내는 데 강력한 장치가 됐다. 또한 새로운 국가권력이 이전 국가권력과의 결별 및 차별화를 위한 ‘과거사 청산’의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20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국가폭력과 관련된 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진상규명운동들이 20세기 말부터 국가차원의 진상규명과 함께 제도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 지점에서 한국사회에서는 ‘다크투어’라는 단어가 등장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문화소비인가, 사회문화운동인가

  다크투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6년 <국제 문화유산 연구저널>이라는 잡지의 특별호에 ‘다크투어리즘’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면서부터다. 그 후 2000년에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의 교수 말콤 폴리와 존 레논이 공저로 펴낸 책 제목을 ‘다크투어리즘’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물론 다크투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의 종교순례로부터 그 맥이 닿아 있고, 순례를 통한 죽음의 의미화 과정은 인류 역사의 오랜 동안 이뤄져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오면서 다크투어는 세계사적인 전쟁과 재난 속에서 특정집단이 겪은 경험을 기억하게 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시민권을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이 경제적․교육적 맥락으로 확장되면서 일련의 문화유산산업, 역사유산산업으로 모색됐다.

  한국사회에서도 2000년대 들어 다크투어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했다. 거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오랜 기간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 사건들이 기억투쟁과 진상규명운동의 과정을 거쳐 제도화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이 공식기억이 된 대항기억을 어떻게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기억으로 유지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또 한편으로는 주체들 간의 기억투쟁을 거쳐 공식기억으로의 전환된 대항기억 외에 부상하지 못한 기억의 배제와 망각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나면서 역사적 기억의 지속적 보전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됐다. 이런 문제제기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다크투어에 대한 모색이었다. 특히 진상규명운동과 기억투쟁과정에서 문화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임을 깊이 각인했던 관련 주체들은 역사적 사건과 기억에 대한 문화자원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또한 원초적 사건의 경험자들이 점차 감소해 가는 상황에서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대중과 후체험세대에게 기억을 전달하는 방식은 문화적 기억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됐다. 문화적 장치들은 시대와 주체에 따라 다르게 선택?선별돼 활용되는 측면이 있는데, 다크투어는 기억에 대한 시민사회의 욕망이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둘째, 근대사회 전반에 대한 반성적 삶이 한국사회에도 확산되는 가운데, 최근 다양한 형태의 타자성에 대한 관심과 사회문화운동을 결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광이 나타나면서 이에 영향을 받았다. 성, 인종, 계급, 시공간적, 지리적 입지의 차이로부터 출현한 다양한 형태의 타자성을 인정한 사회운동형태에 대한 관광은 환경운동, 여성운동, 반핵평화운동, 문화운동, 지역사회운동 등의 신사회운동으로부터 새로운 관광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두고 하비와 문트는 탈근대 시기의 관광이 타자성에 대한 관심과 신사회운동의 결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조광익에 의하면 이는 직접 국가에 도전하는 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시민사회 내에 관심을 두어 가치관을 바꾸고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개발함으로써 변동을 가져오려는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환경적, 윤리적, 문화적 타자의 보존을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다크투어도 이런 영향 속에서 재난과 진상규명운동의 과정을 포함하는 전인적인 기억을 윤리적, 환경적, 문화적으로 녹여내는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으로 모색되기 시작했다. 반면 후기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문화산업의 성장과 소비의 일상화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다크투어는 기존 관광 유형의 새로운 브랜드로 이해되기도 한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맥락이 개입되면서 재난사를 상품화하려는 노력들이 지역별로 경주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상품화될 수 있는 기억들이 선별되고, 새로운 기억 주체로서 산업자본이 등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다크투어는 대항기억의 제도화 및 문화자원화 문제, 근대사회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사회운동, 문화산업의 성장과 소비의 일상화라는 복합적 맥락 위에 태동하게 됐다. 문제는 다크투어 또한 문화적 기억에 기댈 수밖에 없기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재현하는가에 따라 기억의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자본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은 기억의 선택과 배제가 새로운 국면에 놓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크투어가 대항기억을 산출해내는 창구이면서, 한편으로는 자본화와 상품화의 위험성을 내포하게 되는 위치에 놓였음을 말한다. 더욱이 다크투어라는 단어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다크’보다는 ‘투어’이다. 때문에 근대적 투어의 경험을 체화하고 있는 대중들은 여행의 편리성을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고, 그 편리성을 상품화해 제공하면 할수록 문화적 기억의 전일화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피에르 노라는 문화적 기억으로 소급되는 기억의 박제화 위험성을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는데, 그는 기억의 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실상은 망각과 관련된 것임을 주장했다. 결국 한국사회의 다크투어가 직면한 오늘날의 문제는 어떻게 역사적 기억이 산업화와 만나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기억의 박제화를 경계해야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스스로가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전달하는 데 너무 과거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가에 의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공식사과와 배보상 문제가 해결되면서 진상규명운동 과정에서 열렬히 이루어졌던 많은 노력들은 원초적 사건들에 소급되면서 망각되는 경향을 드러냈다. 한국전쟁과 4․19, 5․18, 4․3 등의 진상규명운동은 오랜 기간 이뤄져 왔으며, 그 많은 노력들은 국가의 공식기억에 대항해 기억투쟁을 벌이면서 진상규명까지 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제도화는 진상규명운동의 궤적을 원초적 사건에 소급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최근의 노력조차 먼 과거의 일처럼 인식되도록 했다. 이는 비단 진상규명이 필요한 역사적 사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원초적 사건으로 모든 기억을 소급하는 것은 박물관 혹은 기념관 기억으로 박제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세대에서 세대로, 시민에서 시민으로 기억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건과 관련된 가장 최근의 일들로부터 과거로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의 사건이 마치 끝난 것처럼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기념사업이나 다크투어리즘이 전개돼서는 안된다. 우리가 기념사업이나 다크투어리즘에 주목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단지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테사 모리스가 말한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 대한 진지함’은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람들 사이에 발전적이고 열린 관계를 열어줄 수 있다. 테사 모리스는 ‘진실’이 아니라 ‘진지함’이라는 용어를 강조해 역사적 사실의 존재여부에 대한 지루한 논쟁을 피하는 대신, 현재 사람들이 과거를 이해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과정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모색되고 있는 다크투어리즘은 상품화, 산업화 이전에 현재로부터 과거에 이르기까지, 사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나 이미지에 폭넓게 접근하는 하나의 통로로 활용돼야 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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