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6.4 월 12:21
기획정치
유럽의 극우주의김민정 /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오창록  |  needyourey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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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호]
승인 2012.05.13  18: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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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6일 끝난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은 사회당의 17년 만의 집권도 아니고 현직 대통령의 낙선도 아니다. 그것은 대선 1차 투표에서 17.9%를 얻은 마린 르펜 민족전선 당수의 부상이다. 이 정당은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선거에 도전해 2002년 결선 투표에 오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높은 득표율은 얻은 적은 없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젊은 층에서 26%의 지지율을 나타내 젊은이 4명 중 1명이 르펜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왜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높은 비율로 극우파를 선택했는가.

 
 ▲ 2012년 5월 2일자 조선일보

유럽 극우정당의 현황


1980년대 유럽의 극우세력은 극단적인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지지기반이 급속히 확대돼 최근에는 유럽 각국에서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고 있고, 때로는 연립정부의 한 축이자 지방의회의 집권세력이 되기도 하면서 제도권 정치로 진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극우세력은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와 같이 폭력과 테러로 유럽의 불안정을 부추기고 있다.

노르웨이에는 카알 하겐이 이끄는 진보당이 극우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당은 보수적인 자유주의와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큰 정치적 영향력이 없었으나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지지기반이 확대됐다. 마침내 2005년 선거에서 22%의 지지율을 얻었고, 2009년 선거에서는 22.9%의 지지율로 41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이로 말미암아 한 세기 가까이 노르웨이 정치를 주도해 온 노동당이 실권하고 진보당이 우익 연정에 참여하게 됐다. 스웨덴의 민주당은 신나치즘에 뿌리를 둔 극우정당으로 2010년 9월 스웨덴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1988년 창당해 그동안 의석을 1개도 얻지 못했으나 2010년 총선에서는 5.7%의 득표로 20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2010년 10월 10일 오스트리아 지방자치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당수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드라헤가 27%의 지지율을 얻었다. 1986년부터 2000년까지 나치 추종자인 하이더의 리더십 아래 활동하던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1999년 총선에서 전국 득표율 27%와 의회 52석을 차지함으로써 제2당이 됐다. 선거 후 우파정당인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하며 제도권에 진입했다. 극우정당이 정부에 참여하자 유럽연합은 자유당의 연정 참여는 극우정당을 합법화하는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자유당은 내각 장관 자리에 6명을 진출시켰고, 특히 오스트리아 남부 유권자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정당은 1994년 오스트리아의 유럽연합 가입과 유로화 사용을 반대했다. 또한 현재도 반유럽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도 반대한다.

덴마크 국민당(DPP)은 2001년 총선에서 득표율 12%와 국회 의석 22개를 차지하면서 제3당이 됐다. 현 중도 우익 연정에서 DPP당은 정치 망명자에 대한 엄격한 정책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비를 삭감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한편 네덜란드의 극우정당으로는 핌 포르튠스 리스트(LPF)당이 있었다. 이는 핌 포르튠스가 창당하고 그가 암살된 2002년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다 마침내 2008년에 해체됐다. LPF는 2002년 선거에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어 17%의 득표로 26개의 의석을 배분받아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벨기에 극우당인 플레미쉬 이익당(VB)은 플랑드르의 독립과 플래미쉬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과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80년대에는 1개 의석에 머물렀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지지기반이 급격히 확대돼 유효 득표 6% 이상을 거둬 지속적으로 10개 이상의 의석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최고의 득표는 2003년 11.6%의 지지율로 18개의 의석을 얻은 것이다. 현재는 2010년 선거를 통해 7.8%의 지지를 얻어 12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에는 북부 연합과 내셔널 얼라이언스라는 두 극우정당이 있다. 외국인을 거부하는 북부 연합의 당수는 움베르토 보시이고, 파시즘을 추구하는 내셔널 얼라이언스의 당수는 지안프랑코 피니이다. 이 두 당은 2001년 총선 이래 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당과 연정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북부 연합에 각료 자리를 3석이나 제공했다. 인간노예상들을 향해 발포할 수 있도록 해안경비대의 권리를 인정하고, EU는 아동 성폭력범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믿는 북부 연합이 이탈리아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문화 충돌과 경제위기


이렇게 북부 유럽으로부터 영국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반이민과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정당들이 90년대부터 세력을 크게 확장했다. 이것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첫째는 2001년 미국의 9.11 사건과 관련이 있다. 알 카에다에 의한 뉴욕 테러는 전 세계에 이슬람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의 충돌이 도처에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이를 통해 이미 유럽사회에 살고 있던 이슬람 이민자들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또는 기독교 문화에 대한 공격자로 인식케 하는 계기가 됐다. 이미 유럽 전역에는 상당수의 이슬람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유럽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1960년대 이후 유럽의 노동력 중 일부는 이들에 의해서 채워졌고, 유럽의 경제성장은 이들의 노동력에 어느 정도 의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 사회의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고수했다. 이와 더불어 2004년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유럽은 더 이상 기독교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졌고, 내부에서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이민자들을 반대하고 유럽의 정체성, 유럽 및 자국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정당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둘째로 90년대를 지나고 2008년 금융위기에 이르러 유럽사회의 경제는 더욱 어려움에 직면했다. 유럽 각국은 복지혜택을 축소했고 경제의 세계화와 더불어 고용유연화정책을 도입했다. 이러한 결과로 실업률은 높아졌으며 연금 및 각종 사회보장 혜택이 줄어들자 성난 하층 계급은 좌파 정당을 지지했던 투표 성향을 철회하고, 그들의 일자리를 이민자들이 빼앗아 간다고 주장하는 극우정당을 지지하게 됐다. 더구나 중동부 유럽 국가들까지 유럽연합에 참여하자 각국의 공장들은 신생가입국으로 이전했으며, 반대로 신생가입국으로부터 값싼 노동력이 유입됐다. 그러면서 기존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노동시장은 더욱 악화됐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유럽연합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이들이 반유럽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들에게 투표하도록 부추겼고, 선택된 정당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유럽의회에 보내어 유럽의 확대를 반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유럽의 극우주의 상황은 어쩌면 한국과는 거리가 먼 얘기일지도 모른다. 유럽의 이민자는 대부분 10% 정도에 이르는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1.9%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의 상당수가 결혼을 통하는 여성 이민자들이고 이들은 영주권 획득이 목적이기 때문에 유럽의 초기 이민자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도 9.11, 혹은 경제위기와 같은 도화선이 제공된다면 대중의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증대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유럽은 이미 산업발전과 더불어 부족한 노동력을 수급하기 위해 이민을 받아들인 국가들이다. 새로운 노동력의 유입으로 그들의 사회는 안정적으로 발전했다.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기구 역시 확대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고 새로운 노동력을 수급한다는 목적을 비교적 슬기롭게 달성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의 가능성을 단기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주장으로 거부하면 유럽의 앞날은 오히려 어둡다. 한국 역시 인구 감소 및 노동력 수급의 원활한 조정을 위해서 외국의 이민자가 필요하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유럽의 극우는 지극히 단기적인 선택이며 결코 유럽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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