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춘 /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2011년 7월 22일 부유한 복지국가이자 노벨평화상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에서 극우주의자에 의한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유럽 사회에 나타난 이민 반대와 인종주의 분위기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노르웨이는 사회 갈등이 적고 조화로운 다문화주의를 실현해 온 나라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비록 특정 개인의 일탈적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유럽에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감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지역에서 이민과 다문화는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자본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노동이동이 크게 늘었다. 유럽의 주요 도시와 항구에는 수많은 이주근로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에 의해 이민족 문화가 형성됐다. 당시 제국주의적 세계화가 심해지면서 1차 세계대전을 초래했고, 종전 후에 일부 지역에서 역이주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1929년 발생한 세계 대공황으로 보호주의와 국가주의가 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기반을 둔 세계화가 후퇴하고 자유시장주의도 급격히 약화됐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주의의 등장과 갈등이 더해졌던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유럽 대륙에서는 나치즘이 창궐하면서 인종주의가 확산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경제적 호황이 지속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진 서유럽 국가들이 대규모의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이들이 곳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면서 다문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독일의 터키인들, 프랑스의 모로코 및 알제리인들, 영국의 인도 및 파키스탄 출신 이주민들이 대표적이었다. 네덜란드도 수많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였다. 서유럽의 이주민과 다문화 현상은 노동력 이동이라는 경제적 이유 외에도 과거 식민지 주민의 이주라는 정치적인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전후 장기간의 경제적 호황은 대공황 시기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국가주의를 약화시켜 노동 이동을 크게 촉진시켰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은 노동력 수출을 통해 자국의 경제 발전을 꾀했다.

1970년대의 세계적 경제 침체를 비롯해 80년대와 90년대 초 유럽은 경기 위축을 겪었지만 오히려 세계화는 더욱 심화됐다. 유럽과 비유럽 간의 이주가 증대됐으며, 90년대에 유럽의 경제통합이 진전되면서 유럽 역내 이주 및 노동 이동도 매우 활발해졌다. 주요 서유럽 국가들의 이주민 비율은 갈수록 높아져 전체 인구의 10-20%에 달하게 됐다. 유럽연합은 완벽한 경제통합을 이루기 위해 단일통화를 도입하고 역내에서 생산요소의 활발한 이동을 통해 회원국 간 격차를 줄이고자 했다. 특히 노동 이동은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 같은 자유로운 노동 이동을 방해하는 장벽은 여전했다. 특히 국가주권을 약화시키는 경제통합 자체를 반대하거나 이민에 대한 반감을 표하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이에 따라 반이민을 표방하는 극우정당이 유럽 전역에서 정치적으로 크게 득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으로도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와 북유럽 국가들의 외국인 비중은 전체 인구의 약 10-20%를 차지하게 됐다.

 

 만남(M. C. 에셔作, 1944)
 만남(M. C. 에셔作, 1944)

 

반이민 정서와 다문화주의의 위기


유럽 국가들은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사회적 환경에 따라 각각 차별화된 이주자 통합 모형을 채택하여 발전시켰다. 이는 크게 ‘다문화주의 모형’(대표적으로 스웨덴), ‘차별적 배제 모형’(대표적으로 독일), ‘동화주의 모형’(대표적으로 프랑스)으로 구분된다. 다문화주의와 구분되는 ‘차별적 배제 모형’이나 ‘동화주의 모형’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적용됐던 이주민 통합정책이다. 다문화주의는 이주민 집단 고유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이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 것을 말한다. 스웨덴은 다문화주의의 이상적 목표인 문화적 인정과 존중, 사회적 평등과 분배, 정치적 참여 보장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유럽에서 다문화주의를 표방한 나라는 북유럽 국가들과 네덜란드, 영국 등이었다. 그 외에 독일과 같이 사실상 다문화 사회를 인정한 나라들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문화 사회를 성공적으로 유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던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반이민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덴마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반이민 정당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2010년 9월 스웨덴 총선에서는 반이민주의를 내건 스웨덴민주당(SD, 1988년 창당)이 5.7%(20석)를 득표해 사상 처음으로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일 수도 있었다.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하면서 여러 사회·문화적 문제들이 야기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웨덴 자국민들 중에서는 외국인들이 스웨덴 문화에 적응하지 않은 채 복지 혜택만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 중에는 극우주의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민당을 지지하는 근로자들도 상당수다. 그들은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독일의 많은 정치인들도 좌우를 막론하고 반이민을 강조한다. 그들은 이민자들로 인해 독일 사회의 지적 수준이 저하되고 있으며, 사회복지가 악화되고 범죄율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다문화주의 위기의 원인, 그리고 통합의 문제


유럽의 반이민 정서와 다문화주의 위기 현상에 대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민족주의 및 국가주의의 부상이라는 측면이고, 나머지는 경제 위기에 따른 높은 실업률 등의 경제적인 요인이다. 이와 더불어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보호주의의 형태로 발현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경기침체와 긴축재정으로 실업이 늘고 복지혜택이 줄어들면서 이주민들이 일차적인 배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부수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의 이주 장벽 높이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공동이민 제한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유럽의 이주 및 다문화 문제는 갈수록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같은 유로존 회원국들에게 재정을 지원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반감을 느끼고, 나아가 다른 민족의 국민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유럽 정치의 핵심 문제로 등장한 것 중 하나가 이주자 문제와 다문화 사회이다. 세계화의 심화로 인한 국민국가의 위기는 국경의 약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한편으로 또 다른 성격의 문화적·인종적 경계 및 배제를 구축하거나 강화시켰다.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화로 국민국가의 경제 및 사회질서가 흔들리면서 대중들, 특히 하층계급은 정체성의 위협을 받게 됐다. 그들은 이주노동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며 극우파에 기대려는 경향을 보였다. 초세계화로 인해 국가의 주권이 약화되고 분배의 몫을 이주민들과 나눠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화의 이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일부 계층이 다문화를 배격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선 국가와 보완적 관계를 갖는 시장에 기반을 둔 안정된 세계화가 진행돼야 한다. 그리하면 경제 위기의 심각성은 줄어들 것이고 이주와 다문화 또한 반동적 역풍을 덜 맞게 될 것이다.

현재 유럽의 다문화주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초세계화가 가져온 국민국가의 약화와 경제 위기로 인해 다문화주의를 수용하기에는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일부 세력에 편승해 다문화 사회를 배격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서유럽 국가들이 꾀하는 이주자 통합정책은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방향보다는 이주민에게 자국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소수집단의 문화를 배제하는 ‘동화주의 모형’으로 변화되고 있다. 최근에 형성되는 유럽 국가들의 내·외적 환경이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데 우호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주민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주민의 사회통합에 관심을 갖고 이들이 물적·비물적 자원을 많이 보유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유럽 국가들의 몫이다. 이는 유럽이 추구하는 규범권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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