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한국의 에너지 문제에서 가장 큰 화두는 정부의 에너지정책 기조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고도성장·수출우선정책을 제1의 국가 운영 방향으로 잡아왔다. 따라서 에너지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해 가격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을 에너지정책의 금과옥조로 여겼다. 에너지 업무를 산업정책의 주무부처(현 지식경제부)가 주관하고 있다는 것이 단적인 방증이다. 지금껏 한국은 에너지를 값싸게 공급하기 위해 원전이나 대형 화력발전 위주의 중앙집중형 에너지 공급 구조에만 관심을 쏟았다. 산업화 시절에는 낮은 에너지 가격이 일부분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경제규모가 세계 15위권에 이를 만큼 덩치가 커져 고도성장이 불가능해졌고, 에너지 공급으로 인한 사회적 편익보다 에너지 과소비로 인한 부정적 손실이 커지면서 에너지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수요 관리보다는 공급, 환경성보다는 경제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에너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원자력 발전이다. 원자력 발전은 대형화·집중화된 현재 에너지 체계의 상징과도 같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 각국이 원전 포기를 선언하거나 증설 계획을 보류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10여 개의 원전을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작년 9월 전국적인 순환 정전이 일어나면서 안정적인 공급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여전히 에너지 수요 관리보다는 피크 관리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지하고 있다시피 원자력은 사회적 리스크가 너무 크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전과정 평가를 통한 사회적 비용을 추가하면 결코 저렴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재생가능에너지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원전은 한 번 가동하면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 과소비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심야전기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원자력은 공급관리에너지정책의 상징이기에 현재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원가주의’에 근거한 에너지정책


에너지와 관련해 주요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쟁점은 에너지 가격 문제다. 이상 기후를 일상 기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너지를 더 이상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축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2100년까지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나라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금액이 2천8백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년에 약 30조 원 정도의 사회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의미인데, 가시적 피해와 드러나지 않은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에너지는 더 이상 값싸게 제공할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다. 오염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사회적 비용을 에너지 요금에 포함시켜 ‘사회적 원가주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에너지 요금은 가정·상업부문이 산업부문을 교차·보조해 주는 매우 불합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산업용 요금을 우선 조정하는 등의 순차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종 에너지의 60% 가량을 산업이 소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용 위주의 정책은 에너지 수요 측면에서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산업계 측은 기업들의 부담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요금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고 있고, 특히 전기의 경우 발전원가도 안 되는 수준에서 제공되고 있다. 기업들의 부담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수용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편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더 큰 부담을 느끼는 건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 계층이다. 에너지는 의식주 문제처럼 기본권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에너지 복지 대책이 필수적이다.

 

분산화된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


에너지 산업의 소유 구조 문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에너지 시장을 민간에 개방해 상호 경쟁을 통해 질적·양적 성장을 기대하자는 의견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공공재의 민영화와 통제 불가능 문제 등을 들어 한전을 재통합해 오히려 공공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환경단체들 중에서도 정부 보조 없이는 사실상 원자력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원전과 소유 구조는 별개 문제이기 때문에 비효율성에 관한 문제는 정부나 한전 개혁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 상존하고 있다. 이처럼 이해관계의 조정이 난망하긴 하지만 분명한 건 에너지와 환경, 사회공공성 문제를 통합적으로 봤을 때 중앙집중형 에너지 체계는 분산화된 에너지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는 점이며 이에 따라 소유 구조 의제도 변화할 것이다.

그 외에도 에너지는 재생가능에너지 비중, 에너지원 확보, 세금체계 개편, 해외자원개발 등의 수많은 쟁점을 안고 있다. 난제들이 많다는 건 이해관계가 다양하다는 것이고 이해관계가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에너지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너지는 여전히 현대 문명을 지탱하고 있는 구동축이다. 현재의 에너지 체계에서 문제점이 속속 발생하는 건 에너지 체계와 인프라, 더 나아가 현대 문명에 대한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수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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