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사회에서 합법화된 도박산업의 규모는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도박산업의 매출규모는 2001년 9조6천448억 원에서 지난해 17조3천270억 원으로 지난 10년간 약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복권과 경마에서 시작한 합법 도박은 카지노, 경륜, 경정, 스포츠 토토, 허가된 소싸움까지 매우 다양해서 이러한 추세라면 매출액이 팽창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64조에서 88조 정도로 추산되는 불법도박까지 고려하면, 한국사회는 가히 도박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도박은 도덕적 측면에서 사회악으로 규정될 뿐만 아니라, 형법에 의해서도 금지되고 있다. 도박이 사회적으로 금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박이 갖고 있는 본질적 특성으로부터 연유된다. 흥분과 현기증, 그것이 중단되었을 때 오는 권태와 불안감, 그리고 게임의 반복과 금전적 내기의 추가는 흥분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으로 도박의 본질적 특성이다. 게임을 영원히 계속하는 것, 이것은 게임의 논리이자 도박자의 근본적인 목표이다. 연속적인 흥분을 위한 게임반복은 도박자들로 하여금 ‘중독성’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 도박산업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합법화된 모든 종류의 도박참여자 중 약 50% 내외는 문제도박자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비율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흥분의 계속적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금전이 개입되며 도박산업의 특성상 고객들은 확률적으로 절대 돈을 딸 수 없다는 데 있다. 가정파탄, 사회적 관계의 단절, 실업, 경제적 파산, 그리고 범죄와 자살에 이르는 많은 문제도박의 결과들은 도박산업의 특성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이러한 사회악을 왜 합법화하는 것일까?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국가가 지원하는 도박’을 오직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만 납세될 수 있는 유일한 세금으로 보고 공공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복권 발행을 추진한 바 있다. 그는 특정 목적을 위해 직접세를 부과하기 어려운 정부에게 도박은 필요한 공공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복권의 가격은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어떤 피해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구입이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다고 제퍼슨은 믿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물론이고 기능주의적 관점에 서 있는 사람들도 합법적 도박의 체제 유지 기능을 강조한다. 사회학에서 최초로 기능주의 관점에 입각해 도박의 합법화를 설명한 데베레는 도박의 특성이 지배적 경제제도들의 윤리를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투기적 충동들과 윤리적으로 일탈적인 경제적 동기들이 도박이라는 별개의 제도적 맥락 속에서 다소 해롭지 않게 비껴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박의 합법화는 실업자나 하층계급과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벼락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들과 불평등은 은폐된 상태로 남아 있게 되며, 체제의 기본적 토대들에 대한 드라마틱한 공격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합법적 도박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사회체계에 대한 심각한 파괴 없이도 지배적인 윤리적․경제적 체제들에 의해 추진되지 못하는 가치들을 추구할 수 있는 별도의 사회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사적 영역의 도박을 범죄화해서 처벌하고, 합법적 도박을 탈범죄화해서 허용하는 모순된 정책을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박은 불가피한 사회적 현상일지 모른다. 여러 가지 형태의 도박에 대해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반대자들이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취하건 간에,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행해지고 있으며 암묵적으로 승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합법적 도박을 제한 없이 확대시켜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부의 합법적 도박에 관한 적절한 제한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합법적 도박의 확산에 대한 제재와 그 시점의 선택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도박규제에 있어 유일한 행위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도박 사업자라는 모순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문제도박의 예방을 위한 만족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장 심각한 도박중독의 주체가 정부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학문적 측면에서 도박문제의 해결을 위해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은 문제도박자들을 ‘병리적 도박자’라 규정하고, 병적 도박행동을 치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제도박자들은 충동성, 비합리성, 그리고 의존성의 측면에서만 규정될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일면 설득력 있기는 하지만, 사회문제의 개인화를 통해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고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비록 어떤 단일한 설명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문제도박은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율성, 이성, 그리고 통제의 상실이라는 측면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는 소비사회의 출현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 충동조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문제도박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사회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합법화된 도박이 문제도박자들을 생산해 낸다는 것이 더 올바른 설명이 될 수 있다. 도박산업의 확장은 소비사회의 출현과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이 연관성을 규명하는 것이 문제도박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 따라서 도박문제에 관한 거시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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