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빈센트 반 고흐(이하 빈센트)는 밀밭 그림을 자주 그렸다. 그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빈센트가 생애 마지막에 그린 긴 파노라마 구도의 연작 그림 중 하나이다. 까마귀가 나는 하늘 밑으로 펼쳐진 밀밭에 세 개의 길이 나 있는 이 그림은 흔히 불행한 화가의 자살이라는 최후의 비극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려진 마지막 절망의 절규로 설명돼왔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그렇게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볼 때마다 같은 느낌이 들지도 않는다. 어떨 때는 슬프지만 어떨 때는 즐겁다. 어떤 그림이라도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그 느낌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림 보기에 미리 정해진 정답 따위는 없다. 그림 보기란 언제나 느낌이 달라 다양해서 좋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절망한 적은 없다. 도리어 언제나 이 그림이 전체적으로 조화롭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언제나 불안감이 아니라 안정감을 느낀다. 

  나는 이 그림이 매우 단순하고 조금은 유치해서 좋다. 또한 솔직하고 순수해서 좋다. 잔재주를 타고 나지 않은 아마추어가 그냥 멋대로 쉽게, 빨리 그린 것 같은 점이 좋다. 아니 타고난 촌놈이 오래오래 가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기만 했던 제 가난한 고향을 마치 그곳의 흙과 하늘 자체로 그린 그림 같아서 좋다. 그에게는 본래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는 엄청난 손재주가 없었다. 화가가 그린 나무 그림 위에 새가 날아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빈센트의 경우에는 있을 수 없다. 아마 이 그림을 밀밭에 내걸어도 까마귀 한 마리 날아들지 않으리라. 

  이처럼 그의 그림은 그냥 평범한 아마추어 그림이어서 좋다. 대단히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 같은 걸 담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도상학이니 미학이니 하는 갖가지 현학적인 해석이 굳이 필요 없어 좋다. 그냥 바라보면 좋아서 좋다. 빈센트도 그렇게 그림을 그렸고 자신이 노동자처럼 그리듯이 노동자들이 그의 그림을 푸근하게 봐주길 바랐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정직한 노동자가 가장 순수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그들을 좋아한 빈센트는 세상에 버림받고 멸시받는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화가가 되기 전 20대에 그는 목사가 돼서 비참하게 사는 노동자들을 위로하고자 했다. 그렇게 되지 못해 화가가 됐으나 노동자들을 위로하고자 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위로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공감하며 그들의 삶이 옳다고 하고, 그들을 멸시하는 도시인들에게 노동자의 삶처럼 살아가라고 권하는 것을 뜻한다.     

  흔히 빈센트 그림의 주제가 태양이나 밀밭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겐 ‘길이 더욱 중요한 주제로 여겨진다. 길은 여행이고 방랑이며 탐구의 상징이다. 빈센트는 삶을 길 위의 방랑이자 순례이자 여로라고 봤다. 그것은 그냥 걷는 것이 아니다. 억압적인 사회제도로부터 자유를 추구해 탈출하는 투쟁의 길이다. 태양과 밀밭은 그 투쟁의 목표인 유토피아를 상징한다. 그에게 있어 유토피아란 “너무나도 솔직한 사랑과 우정과 노동의 세계”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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