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묵 / 음악평론가






  1922년, 터키와의 전쟁에 진 그리스는 고대부터 살아왔던 에게해 연안 지역인 동부 트라키아와 스미르나 지방을 터키에 내준다. 이로써 120만 명 이상의 그리스인이 난민이 되어 돌아왔다. 이들은 아테네와 항구 도시 피레우스의 빈민가에 정착했다. 도시의 하위문화를 형성한 그들의 삶은 버거웠다. 하시시(대마)를 피우며 술, 매춘 그리고 음악과 춤에 의존했다. 이들은 터키에 살 때 익숙했던 기타를 닮은 현악기인 ‘사즈’를 치면서 터키 양식의 노래를 불렀다. 자신들이 생활하던 지역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렇게 생성된 음악이 ‘그리스의 블루스’라고도 불리는 렘베티카이다. 

  1931년, 그리스 왕당파인 메타사그 정권은 렘베티카를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했다. 지배 계층에게 민중의 노래는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예술은 압제를 먹고 성장하는 법. 렘베티카는 민중들의 가슴에 더욱 강하게 새겨졌다. 왕정에 저항하는 반체제운동은 많은 피를 흘리며 승리한 끝에 의회민주주의를 약속받았다. 이후 렘베티카는 2차 대전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그리스 사람들의 민요가 됐다.

  1967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민중들은 다시 핍박을 받았다.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천 명의 지식인과 대학생들을 체포하고 투옥했다. 그리고 저항음악을 금지하는 군법령(13호)이 발효됐다. 반독재 음악가 미키스 데오도라키스도 활동을 금지당했다. 민중들에게는 그의 음악을 듣는 것도 금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에게도 '금지곡'이라는 최고의 인기곡(?)이 있었음을 상기하자. 

  그리스인들은 렘베티카를 부르며 저항 의지를 다졌다. 테오도라키스는 저항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는 방송국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탱크보다 강하다. 독재에 대한 투쟁으로 음악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음악은 사람들을 더욱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든다. 탱크는 시간이 흐르면 녹이 슨다. 그러나 음악은 남는다.' 그의 말대로 1974년에 독재 정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의 음악은 전 세계로 퍼졌다. 이후 독재정권이 금지했던 렘베티카의 사회비판적 가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그리스 민중의 생활감정을 노래하는 최고의 수단이 됐다.

  렘베티카에 없어선 안 될 악기가 ‘부주키’이다. 스미나르의 이주민들이 가지고 온 터키의 민속 악기인 사즈를 변형시킨 부주키는 비잔틴 전통 악기인 ‘탐부라’를 기원으로 한다. 음색은 가늘고 청아하며, 가늘게 떠는 연주법으로 초기 렘베티카의 슬픈 정서를 반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악기였다. 이 외에 기타, 바이올린, 아코디언이 함께 한다.

  그리스는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지배를 시작으로 비잔틴제국,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거쳐 1830년에 독립을 이루었으니 무려 2천 년에 달하는 세월을 피억압 민족으로 살아온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그리스 문화는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렘베티카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견뎌내는 그리스 사람의 호방한 기질과 동방의 영향을 받은 역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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