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창 / 대구외대 외국어학부 교수

스포츠 판타지 :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다양한 속성을 내재할 뿐 아니라 국가 내의 사회제도와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것과 동시에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다. 그러나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도 그 열광의 이면을 들추기 위한 시도는 없거나 부족하다. 본 기획에서는 스포츠를 문화적 코드로 바라보며, 스포츠와 현대사회가 갖는 역학관계와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 ① 스포츠와 정치 ② 레저 스포츠의 명암 ③ 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④ 미디어와 스포츠 상업주의 ⑤ 한국 스포츠 교육의 현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브라질에는 펠레가 있다”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국민적 자존심을 대변하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은 인디아를 줘도 셰익스피어와는 바꾸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마 브라질 사람들이라면 셰익스피어를 줘도 펠레와는 바꾸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돈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재돼 있으며, 현대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환상과 그러한 환상을 낳는 현대 사회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확실히 환상적이고 비합리적인 무엇이다. 왜냐하면 돈으로 평가하는 것 외에 합리성의 근거를 갖지 못한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계산에 맞지 않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과 현대의 각종 스포츠 행사가 보여주는 엄청난 규모와 선전효과를 고려하면 세계 각국이 스포츠의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스포츠 본래의 효용성 때문이 아니라 스포츠가 현대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기장과 TV 앞에서 열광하는 관객의 배후에는 치밀하게 계산하고 철저히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 계산은 정치적일 수도 있고, 경제적일 수도 있으며,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비합리적 상징으로서의 스포츠
 

  스포츠는 외견상 정치와는 무관한 문화 활동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스포츠는 일종의 비합리적 정치적 상징으로서, 스크린 및 성과 함께 3S정책으로 알려진 비합리적 상징조작의 주요한 수단이다. 스포츠에 잠재된 정치적 상징성은 스포츠에 내재된 문화적 주제를 정치적 의미로 전환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력에 대한 지지는 스포츠에 내재된 상징에 대한 지지를 매개로 하여 이뤄진다.

  또한 스포츠를 통한 정치적 상징조작의 과정은 스포츠에 내재된 정치적 상징성을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이입시키는 과정, 즉 정치사회화의 과정이다. 스포츠는 두 방면에서 정치사회화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피치자에게는 그 사회의 일반적 정치문화를 전파시키는 과정을 제공하며, 치자에게는 정치권력의 유지와 확대에 유리한 문화적 환경을 제공한다.

  스포츠의 정치적 상징성으로는 ‘동일시의 상징’, ‘지배의 상징’, ‘보수적 상징’ 등을 들 수 있다. 스포츠는 동일시의 상징을 통하여 가상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며, 이로써 내적 모순을 은폐하거나 외적 모순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스포츠는 우리와 적을 구분하고 우리 공동체의 우월성을 상징함으로써 지배 욕구를 충족시키며 이로써 권력에 대한 복종과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 또한 스포츠는 그 조직 방식이나 활동 방식을 통해 기존 정치문화를 답습하게 함으로써 보수적 태도를 조장한다.

  또한 스포츠는 다양한 외교적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스포츠는 공식 외교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으면서도 공식 외교에 비해 국제법이나 국제 관행의 구속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며, 전쟁과 같은 무력 충돌의 부담을 회피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는 흔히 ‘춤추는 전쟁’ 또는 ‘무기 없는 전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스포츠가 보여주는 외교적 상징성으로는 ‘국가 승인의 상징’, ‘국가 승인 거부의 상징’, ‘화해의 상징’, ‘저항의 상징’, ‘국위선양의 상징’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스포츠가 어떠한 외교적 상징성을 갖는가 하는 것은 스포츠를 외교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국가가 처한 국제정치적 상황의 특수성에 의존한다.
 

스포츠를 통한 정치적 상징조작 
 

  스포츠에는 정치적 통합과 사회의 긴장 완화, 국가 간 우호 증진, 경제 문제 해결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상업적 스포츠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은 상업적 스포츠의 부정적 측면을 은폐하는 위장막에 불과하다. 스포츠의 순기능에 대한 교육과 선전 이면에는 모종의 이익을 노리는 세력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즉 스포츠는 정치적 상징조작의 수단으로 작동하며, 여기엔 스포츠만이 제공할 수 있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정치적 목적에 적합한 이벤트가 기획될 때, 그 형식적‧절차적 정당화를 위한 것으로 ‘보편적 국가이익’이 따라 붙는다. 보편적 국가이익은 주로 수익성, 국가홍보, 파급효과 등과 같은 ‘이익’을 앞세운 언설로 포장되고, 이는 아주 강력한 위장막으로 작동한다.

  또한 스포츠를 통한 정치적 상징조작에는 비용 문제와 같은 경제적 제약이 따르는 동시에 스포츠의 상업화가 심화되면서 정치적 상징조작의 효과와 시장 간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도 확대되고 있다. 이는 정치적 비합리성을 강화하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함으로써 대중을 정치로부터 소외되게 만들며, 열광하면 할수록 대중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데이비드 로빈스는 스포츠를 “부분적으로는 대중 치료, 부분적으로는 저항,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지배적인 정치 및 경제 질서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스포츠 자체는 문화의 한 형태로서 정치적 및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해 중립적이지만, 맥락에 따라 사회통합의 기초이자 저항의 수단으로, 또는 지배의 수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확대되고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과 각종 스포츠 행사에서 보이는 관객들의 거대한 결집력은 엘리트 스포츠에 기초한 상품 스포츠를 지양하고 건전한 대중 스포츠를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사회의 자발적 연대가 스포츠 활동의 중심적인 장이 될 때, 시민사회는 더 이상 정치적 상징조작의 수동적 대상이기를 그만두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사회 개혁을 위한 자발적 연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