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규홍 / 한신대 신학과 교수

대한민국, 기독교 공화국 :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19세기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들어와 종교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사회‧정치적격변과 함께 해오면서 다양한 사회 현상들과 얽혀 있다. 본 기획에서는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한국 사회의 단면으로서의 한국 교회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 ① 한국적 기독교 특수성 ② 선교에 대한 논쟁 ③ 부흥회와 헌금 ④ 기독교 정당 ⑤ 한국 교회의 종교개혁
 

   한국적 기독교의 특수성은 영성의 다양성에 있다. 세계적 기독교는 보편성에 근거하지만 한국적 기독교는 상황성에 기초한다. 세계에는 다양한 민족, 인종, 문화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기독교가 존재한다. 한국적 기독교의 특수성은 이와 같은 전제에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세계 기독교 가운데서 한국 기독교만이 가진 독특한 성격은 무엇인가? 세계 선교 역사상 유래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한국 기독교는 결코 백지(Tabula rasa)의 땅은 아니었다.

   삼국시대부터 전파된 불교와 조선 사회를 지탱해온 유교는 민속신앙인 무교와 함께 한국인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영성이었다. 비록 기독교가 봉건적 구습타파와 반외세 독립의 대안가치로 전파될 때 재래 종교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한국인들의 생활세계는 영성적 차원에서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한국 기독교의 성장 배후에는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뿌리내린 이들 전통 종교의 영성이 작용한 것이다.

한국적 기독교의 역사적 맥락

  이 글에서는 한국적 기독교의 특수성을 복음 수용의 외적 요인이나 상황적 변수를 통해 비교하기보다, 본질적인 한국 문화 전통과 종교 영성들에 관점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내면 동기와 행동요인이 이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한국 기독교는 봉건질서가 가진 민중 모순과 외세의 침략이란 민족 모순 속에서 민중해방의 열망을 담고 민족의 독립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정착됐다.

  그리하여 기존의 유교, 불교, 무교의 마성적 영성 요소들이 만들어 놓은 염세적이고 운명론적 생활 태도와 양반제도하에서의 신분적 차별과 성적 억압을 거부하고 절대자 앞에서 선택적인 자유로운 삶과 평등한 인권의식을 고취시켰다. 초기 한국 교회는 이와 같은 면에서 주체적인 삶의 윤리의식과 자유의 가치를 지향한 해방공동체였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서구 열강의 배후에 존재하는 기독교 문화에 대한 사대적 발상에서 힘과 자본의 논리를 지향하는 운명론적 공동체의 모습도 있었다.

   특히 일제의 을사늑약이 일어난 1905년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부흥운동은 민중의 해방 열망과 민족적 관심을 개별화하여 내재화하는 한편, 다른 면에서는 현실의 모순을 초월하는 타계적이고 신비적 차원으로 그 힘을 외재화하여 분산시켰다.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영성이 가지는 두 차원이 3‧1운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3‧1운동은 한국 기독교가 불교, 천도교와 연대하여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성을 쟁취하고자 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운동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 한국 기독교는 민족 현실의 모순을 도외시하고 타계주의와 신비주의로 그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한 교회성장주의와 교회 확장에 전력한 것이다.

  한국적 기독교의 특수성은 바로 이 시기에 결정됐다. 3‧1운동을 분기점으로 한국의 종교 영성들과 전통 문화를 창조적으로 적극 수용했던 한국 기독교는 이후 배타적이며 공격적으로 영성세계를 축소시켰다. 3‧1운동의 주체는 민중이었지만 운동의 이념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기독교의 메시아니즘과 결합한 불교의 미륵불 신앙과 천도교의 후천개벽사상 등에 근거한 해방 영성이었다. 

  그러나 3‧1운동의 실패와 좌절은 한국 기독교로 하여금 한국 문화와 전통 종교의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를 수용하며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서구 시민사회의 근대적 영성으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환원시켰다. 따라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영성의 중심에는 근대적 시민사회의 개인 성공 윤리와 집단의 권력화 논리가 자리 잡고, 재래 종교가 가진 마성적 영성 요소들이 결합했다. 그것은 3‧1운동 이후 기독교인들의 개별적 신분 상승과 교회의 종교권력화에 기인해, 이를 정당화하는 기복주의‧타계주의‧권위주의 등의 현상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한국 기독교의 특수성은 조선조 말 봉건체제와 일제의 식민지라는 19세기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현상적 반응 형식에서 볼 때, 다양한 민족사적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시대의 역사의 방향성과 가치의식을 제공하는 종교 영성과 문화를 가진 기독교의 본질적 차원에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주체적이고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갖추지 못했다.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특수성은 일제 후반기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고 확산됐다. 

  따라서 일제 말에 신사 참배를 통한 기독교 말살정책 앞에서 일부의 반대자들을 제외하고 한국 기독교가 무력하게 붕괴될 수밖에 없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해방 후 한국 교회는 기독교적 가치에 의한 건국이념을 뚜렷이 내놓을 수 없었다. 8‧15해방이 진정한 자주적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남북분단이란 미완의 해방으로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세워지자 교회도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과거 청산과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입장에서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드러냈다. 북한의 사회주의 소련 군정에 반대한 기독교는 남한의 자본주의 미국 군정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제1공화국의 이승만 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1980년 6월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찬 기도회는 전국적으로 생중계 됐다.
1980년 6월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찬 기도회는 전국적으로 생중계 됐다.
  한국 기독교의 특수성인 정교유착은 초기 선교사 시대의 ‘양대인화’에서부터 일제식민지 시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외세의존적인 지속적 과정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한국 기독교가 주체적인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독교의 성서적 가치와 윤리를 지향하는 종교 영성과 생활 문화를 갖추는 데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한국적 기독교가 이미 이 땅에 존재해 온 역사적 종교로서 불교와 유교의 영성과 문화유산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면서 시대마다 주어진 역사적 과제들을 선교적 소명으로 받아들여 창조적으로 대화를 해왔다면, 오늘날처럼 교회가 권력과 자본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기변색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에는 전통 종교가 가진 부정적 요소인 기복주의와 세속주의, 권위주의가 핵심으로 파고들어 예수 그리스도가 지향한 자유와 평등이란 기독교 고유의 가치와 윤리체제를 무력화 한 것이다. 그러한 현상의 극단적 왜곡이, 한국 기독교의 권력의 절대화와 상품화이다. 정의가 힘이 아니고 힘이 정의라는 힘의 절대화, 말씀보다 떡이 먼저라는 물질의 비교우위화는 한국기독교를 성령의 논리보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고, 은사보다 제도를 앞세우는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한국 기독교에는 스스로 정통이라고 하는 이단적 정통이 큰 문제이다. 정통이란 정체성과 어떠한 정당성도 없이 교회 재정의 크기나 교인수로만 그 정통성을 주장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과연 전통 종교인 불교 영성이 지향하는 무소유의 자기절제와 자기부정이 있는가? 조선사회의 정치이념이었던 유교 영성이 말하는 극기복례와 자기수련의 성숙의 과정은 있는가? 한국 기독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막12:17)조차도 구분하지 못하고,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이라는 ‘소유지향’과 낮은 곳보다 저 높은 곳을 향하는 ‘권력지향’으로 치닫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 영성에 기초한 기독교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해야 한다. 모든 것은 정치적이지만 정치적인 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 현실을 지배하는 가이사의 것을 예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이 모든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 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시지만 모든 것을 넘어서서 절대 없음의 자유를 갖는다. 그것이 성서적인 기독교의 특수성이다.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정교분리’란 이름으로 하나님의 것에 가이사가 어쩔 수 없는 것을 일찍이 포기하거나 ‘정교유착’이란 명분으로 가이사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하나님의 영역을 반기했다. 이것은 기독교 영성이 아니다. 세속주의화한 전통 종교와 문화의 마성적 영성이며 기독교 문화의 탈을 쓰고 서구자본주의를 선전하는 번영의 영성이다.

  한국 기독교가 주체적인 해방영성에 기초한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갖기 위해선 전통 종교와 문화의 마성적 영성 요소들과 자본주의 번영 영성의 독소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통 종교 문화와 자본주의 영성에 긍정적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융합하여 한국적 기독교의 특수성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한국 기독교는 정교분리도, 정교유착도 아닌 정치와 종교의 나눌 수 없는 부분들을 공유하면서 상호비판적인 관계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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