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특집ㅣ불온한 민주주의

  국가보안법은 남북 분단 이후 국가 안보라는 미명하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해 온 대표적인 악법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말라가고 있던 국가보안법이,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출범 이후부터 그 위세가 범상치 않다. 특히 최근의 통제양상은 표현의 자유를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박정근씨가 만든 북한 패러디 포스터
박정근씨가 만든 북한 패러디 포스터
  최근에는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한 공안당국의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에 입건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상에 친북 성향의 글을 게재하거나 퍼다 나른 행위가 문제된 경우였다. 트위터에서 북한 사이트의 글을 리트윗하고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는 혐의로 지난 1월 11일 구속된 박정근 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최근 그는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가 리트윗한 글은 북한 당국의 대변인 성명과 ‘로동신문사설’ 등이다. 그가 올린 글의 대부분은 북한체제를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한 풍자 내지는 역설적인 표현들이었다. 검찰은 그가 지난 1년 동안 트위터로 올린 글 중 229건을 문제 삼았는데, 같은 기간 그가 올린 글은 무려 7만 건이 넘으며 북한체제를 비난하는 글도 200여 건에 이른다.  

  
  공안당국과 사법부의 기준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 이념인 주체사상이나 선군정치에 관한 글은 물론이고,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FTA 폐기, 국가보안법 폐지의 주장도 ‘이적’ 표현이다. 공안당국은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을 언급하며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대치되는 의견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댄다.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는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의 주장은 언제나 대남적화 무력통일이라는 목표를 유지하기 때문에 북한이 표방한 이념이나 정책과 동일한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올가미를 씌워놓고는, 학자로서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든가 중학생이 호기심에서 북한의 주장을 전파한 경우 등에는 ‘예외’라고 말하며 올가미를 ‘살짝’ 거두어들인다. 결국 사상적 순결성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올가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아마도 박정근 씨는 앞으로 있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려면 자신은 북한체제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롱하기 위한 목적, 즉 역설적 풍자로서 트위터 글을 올렸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할 것이다. 누구라도 사상적 순결성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면 그의 의견이나 표현에는 ‘종북’이라는 불온한 통제가 가해진다.

  이렇게 작동하는 국가보안법의 사상검증기제는 두 가지 맥락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첫째는 위축 효과. 그것은 합법적인 표현이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통제에 순응하여 그러한 행위를 회피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국가보안법의 통제기제는 사실상 북한의 정책이나 주장과 유사한 내용의 표현에 대해 ‘위법성’을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축 효과는 엄청난 수준이다. 둘째는 자기검열의 일상화.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삼아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의 표현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공안당국의 사찰과 통제는 ‘시민의 자격’을 가르는 이데올로기 효과를 은밀하고 광범위하게 창출하고 있다. ‘순결한 시민성’이라는 편협함이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 공간을 점령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 공론의 장을 왜곡하고 파괴해 왔다. 국가보안법은 간첩 잡는 처벌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거대한 이데올로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든,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든, 어떠한 정치적 주장도 사상검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만한 글을 색출하여 공안당국에 신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된 ‘안보카페’까지 등장했다. 10대, 20대의 청년들이 주축이라고 한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와 처벌의 남용도 문제지만, 신자유주의적 계급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가보안법식 사고와 통제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더욱 큰 문제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시민의 주체성의 회복이자 민주주의를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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