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한 /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2006년 말부터 오르기 시작한 국제 곡물 가격은 2008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야기했다. 2008년 하반기에 들어 오름세가 주춤해졌으나 2010년 다시 오르기 시작해 2011년 상반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식량 위기 국면이 나타나고 있다. 곡물 가격의 상승은 육류 소비 확대로 인한 곡물 소비량의 증가, 국제 원유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 곡물을 원료로 하는 농산연료의 확대 정책, 잦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여기에 국제 투기 자본이 개입하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세계 곡물 생산량은 불규칙적이지만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하지만 큰 폭으로 증가하는 소비량과 달리 곡물 재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곡물 재고율은 최근 국제 연합 식량 농업 기구(UN FAO) 권장 수요량의 17%를 밑도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으며 세계 식량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국제기구를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들은 앞 다투어 장기적인 식량 위기가 도래할 것을 예견하고 있다. 국제 구호 단체인 옥스팜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세계의 식품 가격이 2배 가까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OECD와 UN FAO는 연례 공동 보고서를 통해 향후 10년간 현재보다 세계 식량가격이 40%까지 상승할 수 있다며 기아와 식량 안보 문제를 경고하고 있다.

  세계는 농지 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도 더욱 잦아지고 있다. 이는 생산량을 감소시키고 수요량을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해 식량 가격을 상승시킬 것으로 보인다. 식량 가격의 상승은 기아 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가난하여 높은 식량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빈민들은 쉽게 굶주림에 노출된다. 2008년 식량 위기 이후 세계 기아 인구는 약 1억 명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며 최근의 식량 가격 급등으로 인해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가계 지출의 증가는 빈곤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저소득층에게는 높은 식비 지출로 인하여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등 빈곤율의 상승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먹거리 위기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사료를 포함 25% 수준으로, 쌀을 제외하면 5% 수준에 불과하다. OECD 33개국 중 28번째로 매우 낮은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필요한 식량의 7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곡물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나마 낮은 곡물 자급률도 최근 하락세를 보인다. 또한 우리는 수입하는 곡물 대부분을 ‘곡물 메이저’에 의존하고 있다. 소수의 초국적 곡물 기업에 수입량 절반 이상을 의존함으로써 국민의 소중한 식량이 이들 기업의 손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농업 생산 자원 감소, 이상 기후 등으로 자급률은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위협 또한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먹거리 안전 사고는 매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문제와 함께, 먹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며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2010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식품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15.1%, 보통이 47.6%, 불안이 37.3%로 많은 사람들이 식품안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식품에 대해서는 안전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7.2%에 불과하고, 보통이 34.1%, 불안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58.6%로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위협은 국내 생산 과정에서의 요인도 존재하겠지만 주로 세계화된 먹거리 체계 내에 많은 요소들이 잠재돼 있다. 국경을 넘는 먹거리의 장거리 이동이 늘어나면서 저장 및 보존을 위해 사용되는 농약, 방부 및 보존제 처리를 비롯해서 방사능 조사 처리까지 인체에 해로운 방식의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유전자 조작을 통한 GMO 농산물의 증가도 먹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울리히 벡이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역설한 것처럼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탐욕이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온 것이다.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이 여러 국가, 또는 세계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 농업의 세계화이다. 농업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면 생산이 대규모화되고 산업화된다. 산업형 농업은 효율을 중시해 공장 원리를 농업에 적용한 영농을 말한다. 또한 산업형 농업은 농업 생산이 세계시장을 겨냥해 이루어지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심지어 유전자 조작 기술로 종자와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농업의 세계화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농업 생산 구조를 파괴하고 막대한 이윤을 챙기면서 먹거리 안전에 대한 위협을 주도하는 이들이 바로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이다.

  식량 위기와 먹거리 안전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는 동안  농식품 체계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는 사상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들은 종자와 비료, 농약과 같은 농업 투입재부터 생산된 곡물, 육류, 과일, 채소의 가공과 유통 등 먹거리와 관련된 전 분야에서 이른바 종자에서 식탁까지 장악해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다. 이 중 곡물의 저장, 수송, 무역 등을 취급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곡물 메이저라고 지칭하는데 이른바 3대 곡물메이저로 지칭되는 카길, ADM, 붕게는 세계 곡물무역의 약 90%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는 먹거리의 독점을 통해서 지난 2007년 4/4분기에만 ADM은 42%, 몬산토는 45%, 카길은 86%의 수익증가율을 보였으며, 심지어 카길의 자회사인 모자이크비료는 수익이 1,200% 증가했다.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로 인해 개발도상국 농민들은 농자재와 노동력에 대한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즉 전체 생산과정 중 발생하는 이익(푸드달러) 중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면서 농민들의 숫자가 감소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더불어 농민의 위상을 저하 시켜 농민을 종속화한다. 그리고 환경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가 추구하는 경쟁에 유리한 자본 집약형 농법은 단작재배를 하는데 이는 지력을 약화시키고 토양을 황폐하게 만든다. 또한 생물학적 다양성 및 유전학적 다양성을 약화시킨다.

대안 농업, 대안 먹거리를 향해

  농업과 식량에 대한 위기 의식은 결국 먹거리 체계에 대한 문제 의식으로 이어졌으며, 대안 농업과 대안 먹거리 운동의 확산을 촉진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먹거리 체계(로컬푸드)의 구축, 자원순환형 지역 농업의 확립, 슬로푸드 운동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대안적 실천들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과 형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계 먹거리 체계가 가져온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물리적겭英맛�겱??� 거리를 좁히기 위해 지역을 공간적 중심으로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세계 먹거리 체계는 생산과정에서 종자를 비롯해 화학비료와 농약 등 과도한 외부투입재에 의존하고, 생산 후에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장거리 수송으로 인한 화석연료의 낭비가 초래되는 등 지나치게 외부자원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대안농업겢毓회蹈타� 운동들은 외부의존도를 줄이고 가용자원들을 활용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실천으로 나타나고 있는 대안들이 확산되고 대중화돼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더욱 좁혀야한다. 이는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먹거리 체계를 수립하고 지속가능한 한국농업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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