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도 /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제공하는 우주의 마스터 방정식은 우주가 어디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앞으로 어떤 운명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고 있다. 이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우주를 이루고 있는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우주의 구성 성분이 빛과 물질로만 이뤄져 있다고 믿어왔다. 과학자들은 볼 수 없는 가상물질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보수적이다. 불가피하게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려서야 겨우 마지못해 그 존재를 인정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 바로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을 처음 예측한 사람은 1930년대의 즈위키다. 그는 은하단에 속한 개별 은하의 운동 속도가 예측한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관측해 이에 대한 설명으로 은하단에 보이지 않는 질량이 더 있어야만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주류 천문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관측 기술이 발전했고, 별의 질량을 다 모아도 은하 주변부 별들의 운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자 암흑물질이 은하 주변부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공전 속도가 줄어든다. 행성을 당기는 질량은 거의 태양에 의해 주어지므로 일정한 데 반해 그 질량 중심과 거리가 멀어지므로 원운동을 하기 위한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량이 은하 중심에 모여 있는 경우, 은하 주변부 별의 운동도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은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더 천천히 움직일 것으로 예측됐으나, 관측 결과 별들의 속도는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에 상관없이 거의 일정했다.

이 결과는 은하 주변부에도 보이지 않는 많은 질량이 분포돼 있으면 설명이 가능해진다. 즉 은하의 질량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 질량보다 크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본적이 없는 새로운 종류의 ‘암흑물질’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와 같이 알려진 입자가 아닌 새로운 미지의 물질이 은하, 은하단 주변에 퍼져 있어야만 은하의 회전 속도를 설명할 수 있다. 중성자, 중성미자도 빛을 내지 않지만 편의상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물질을 제외한 미지의 물질만을 암흑물질이라 부른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 중수소, 헬륨 등의 비율은 빅뱅 핵합성 이론을 통해 계산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알려진 물질의 우주 평균 에너지 밀도에 대한 기여도는 5%를 넘을 수 없다. 반면 암흑물질이 23%의 비중으로, 일반물질보다 다섯 배나 더 많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인간 중심의 우주에 대한 인식을 또 한 번 크게 바꾸어놓은 사실이다.

은하의 회전 속도, 별들의 회전 속도, 중력렌즈현상 관측, 우주배경복사, 총알성단의 충돌이 암흑물질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증거는 우주 구조 형성이다. 매우 뜨거웠던 초기 우주가 식으면서 양자요동이 남아 현재 우주의 은하, 은하단을 이루는 씨앗이 됐다고 여겨지는데, 일반물질만으로는 도저히 지금 관측하는 구조를 형성할 수가 없다. 또한 구조가 형성됐다고 하더라도 불안정하게 금방 해체돼버려 은하 혹은 은하단이 수십억 년 동안 그 구조를 잃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이런 구조 형성을 가능하게 하고 은하의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의 후보로는 이미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무거운 중성미자, 액시온, 윔프(WIMP)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윔프는 약한 상호 작용을 하는 무거운 입자라는 뜻인데, 대표적으로는 초대칭 이론에서 예측되는 초대칭 입자가 있다. 초대칭 입자는 질량이 양성자 질량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 정도면 현재 필요한 암흑물질의 양을 설명할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질량은 공교롭게도 초대칭 이론이 가장 자연스럽게 예측하는 값이어서 이를 암흑물질을 설명하는 ‘윔프의 기적’이라 부른다.

윔프가 암흑물질임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으로 직접 검출 방법과 간접 검출 방법이 있다. 직접 검출 방법은 땅속 깊은 곳에 검출기를 두고 윔프와 원자핵이 반응할 경우 윔프의 에너지를 전달받은 원자핵이 내는 미미한 열에너지를 검출하는 것을 말한다. 간접 검출 방법은 은하 중심부나 태양 중심처럼 암흑물질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윔프들이 쌍소멸을 할 경우 빛이나 중성미자, 전자-양전자 등의 일반물질로 변환되는데 이를 지구 혹은 대기권에서 우주선 관측을 통해 알아내는 실험이다.

한편 가속기 실험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입자들을 충분히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켜 서로 충돌을 시키면 그 과정을 통해 윔프가 쌍생성될 수 있는데, 2010년 가동을 시작한 유럽입자물리공동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고에너지 양성자들을 양성자 질량의 만4천 배에 해당하는 에너지로 충돌시켜 윔프를 쌍으로 생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성공한다면 윔프는 잃어버린 에너지, 잃어버린 운동량을 통해서 그 존재와 질량을 포함한 성질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십년 간 인류는 숨 가쁘게 우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지금의 이해가 최종적인 답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 특히 암흑물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존재에 대한 확신이 깊어진 가운데, 다양한 실험들이 포위망을 좁혀 그 실체를 LHC 실험, 우주선 관측실험, 지하검출기 실험을 통해 조만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21세기는 그 이전보다 우주의 구성 성분을 다섯 배나 더 많이 이해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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