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곤 /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미디어를 향해 냉소와 조롱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쉽지만 미디어가 우리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미디어의 위기를 바로잡는 것도 독자 혹은 시청자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감독 제임스 맥티그, 2005)는 이처럼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담는다. 배경은 2040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의 영국이다. 밤 10시 30분이면 통금이 내려져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고, 사람들의 대화는 도청된다. 엄혹한 독재권력, 침묵과 복종만 남은 이 곳에서 TV는 볼 게 못 된다.

<브이 포 벤데타> (감독 제임스 맥티그, 2005)
<브이 포 벤데타> (감독 제임스 맥티그, 2005)

  방송국에서 일하던 이비(나탈리 포트만)가 우연히 마주친 정체불명의 사나이 V(휴고 위빙)는 재판소를 폭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침묵을 깨려 한다. V의 다음 목표는 ‘확성기’와 다를 게 없는 방송국. V는 폭약을 싣고 방송국으로 가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에 싣는다. 영화 속 방송국 사람들은 “우리는 정부가 만든 뉴스를 그대로 전달할 뿐”이라며, 고의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집권한 독재자 서틀러(존 허트)의 생각을 그저 옮겨 적는다. 

  우리 사회에서 거대 미디어들은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던 V의 목소리처럼 독자들은 거짓을 골라내야 하고, 시청자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부와 권력이 국민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V의 외침대로 거짓과 공포를 무기로 삼은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미디어의 임무다.

  이비가 V의 진심을 깨닫고 무겁게 드리운 공포를 걷어내려고 일어선 것처럼 영화는 국민이 스스로 보고, 듣고, 말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영화 속의 V가 쓰고 다니던 ‘가이 포크스’의 가면이 요즘 나라 안팎의 시위 현장에 등장하고, 트위터 속 한 마디와 코미디 프로그램의 풍자가 문제시 되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음울한 예고가 현실이 되지 않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와 권력, 자본을 감시하는 미디어의 역할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더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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