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 영화감독

 

<독>(감독 김태곤, 2008)
<독>(감독 김태곤, 2008)


  여기 평범한 부부가 있다. 부모의 유산을 처분하고 어린 딸아이와 함께 상경한 이들은  낡은 아파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이 가족은 사업 번창에 대한 부푼 열망과 곧 태어날 둘째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사 온 첫날부터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꽤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이웃의 장로 부부와 그들의 치매 노모가 불편하지만, 부부는 원만한 사회 생활을 위해 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정성은, 거꾸로 그들 자신의 깊은 죄의식을 끌어올려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부메랑이 되고, 결국 애써 외면해 온 가족사의 처참한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김태곤 감독의 <독>(2008)은 인간의 죄의식이 가장 일상적인 공포의 형태로 발현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파고든 심리·공포 영화로, 저예산의 핸디캡을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시킨 독립 영화계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공포는 잔혹한 신체 훼손, 과격한 편집 등 전형적 공포물의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챗구멍의 머리카락, 환풍기의 검은 때, 멈추지 않는 녹물, 낡은 아파트의 고장 잦은 엘리베이터, 불 꺼진 계단, 텅 빈 놀이터, 일상적인 대도시의 풍경들로부터 차곡차곡 축적된 공포는 관객의 일상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하다.

  한편 이 작품의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성취는, 공포 영화의 외피를 두르긴 했지만, 본연은 현대 가족사의 어두운 이면과 왜곡된 기독교 신앙을 날카롭게 파고든 사회 드라마라는 점이다. 중산층의 행복을 꿈꾸는 젊은 부부의 소박한 소망은, 실상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누구나가 갖고 있는 가장 평범한 물질적 욕망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선 이러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그릇된 믿음은 오늘날 영화보다 더욱 참혹한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순화 기능을 잃은지 오래인 한국 교회는 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회개와 용서의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지나친 욕심은 죄의식을 낳고, 죄의식은 맹신을 낳고, 맹신은 또 다른 추악한 욕심을 새롭게 잉태하는 살풍경이, 바로 급성장하는 한국 현대 사회의 뼈아픈 이면이다. 영화의 마지막, 딸아이가 그린 그림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림 속 단란해 보이는 세 가족 뒤에 보이는 작은 집의 창문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검게 칠해져 있다.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잘 먹고 잘 사는 삶’이라는 것이 과연 어떠한 추악한 비밀과 거래들 속에서 성취되고 있는지,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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