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국가 시기, 즉 재벌 육성을 통한 부의 축적 과정에서 국가는 중앙정보부 지휘 하에 노총을 관리하는 등 강력하게 노동을 억압했다. 이는 저임금으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조직망의 뿌리를 약화시키는 배경이 됐다. 1980년대 노동조직화는 노동부문의 자생적 저항 활동에 의해 이뤄졌다. 집약적 경제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사회불안과 노사분규가 점증했다. 이에 1987년 이전까지 국가는 노동에 대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했고 기업과 유착해 끊임없이 노동조직을 분화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조직력과 연대성에 기초해 적극적인 주장들을 대대적으로 제기하자 국가는 ‘중립성을 견지하며’ 노사문제 당사자들 간의 ‘자율적 해결’을 전략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는 1980년대에 이르러 추진된 경제자유화와 연관이 깊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경제개방화 정책으로 대표되는 경제자유화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면서 신경영 전략이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핵심장치로 부상하게 된다. 억압적 통제보다는 이데올로기를 통한 자발성 생산을 중요시한 국가와 기업은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내·외적 방해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노동조직은 이렇게 자본의 계획에 의해 와해돼 갔다.

  신경영 전략은 담론화를 통해 ‘생산적이고 자발적이며 창조적 주체’인 노동자를 강조하며 일상 생활까지도 기업 활동의 연장으로 포섭해 관리한다. 국가가 신한국·국제화·세계화를 모토로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추진된 노동유연성의 극대화 전략은 다양한 형태의 간담회, 강연회, 토론회를 통해 세계화 전략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조직적인 담론적 실천을 포함한다. 여기서 세계화는 경쟁력과 동의어로써, 유연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연관된다. 이후 기업들은 ‘경영혁신·경쟁력강화·신경영·무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성과 경쟁력 장치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이는 작업장 주변의 사회문화적 영역에서도 작동하는 ‘권력에 대한 동의’라는 이데올로기이다.  동시에, 끊임없이 노동을 분화하는 제도들(2·3 교대제, 비정규직화, 아웃소싱 등)을 통해 갈수록 노동자의 위치는 전락하고 노동운동의 조직화는 어려워지고 있다.


                                                                  전민지 편집위원 | amber.j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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