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대신들도 저리 당당했을까. 을사늑약의 공식 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다. 5개 조항으로 이뤄진 주요 내용은 대한제국의 식민화를 위해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와 이사청을 두어 내정을 장악하는 데 있었다.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당시 조선은 명목상으로 일본의 보호국,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 중인 한미 FTA는 어떠한가.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의 동포 간담회에서 “옛날에는 전쟁으로, 무력으로 영토를 넓혔지만 21세기에는 FTA가 경제 영토를 넓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FTA가 경제 영토를 넓히는 것인지,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 보아야 한다. 국가 간 협정은 이익 균형의 원칙에 따라 체결돼야 한다. 그러나 한미 FTA가 불평등한 협정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곳곳에 포진해 있는 독소 조항은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입는 피해를 보상받을 길마저 차단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의회는 ‘한미 FTA 이행법’을 제정하면서 한미 FTA와 미국법이 충돌할 경우 원칙상 미국법(연방법뿐만 아니라 주법까지 포함)이 우선한다고 규정했다. 즉 미국법이 가장 우선시 되고 그 다음으로 한미 FTA가, 그리고 그 밑에 우리나라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속국이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국 시장의 생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협정문에 담긴 이면의 뜻까지 꼼꼼히 분석한 다음,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는 것은 국가 간 협정에 임하는 기본적인 자세다. 어디 우리 정부가 그런 모양새를 취한 적이 있던가. 그저 화려한 홍보 영상에 그럴 듯한 말을 덧씌워 국민들은 현혹시키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하고, 야당은 차라리 날치기 통과를 하라며 슬그머니 발을 빼는 형국이다. 대형 언론 또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를 옹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 정부는 시장만능주의의 결정체인 한미 FTA에 국민 99%의 안전보장권리를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FTA는 국가 보호망을 걷어내 국민을 자본과 마주하게 하는 협약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정부는 반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가 손에 들고 있는 FTA 협정문은 이후 수십, 수백 년 동안 이 땅에 태어나는 자들의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