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구 /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신자유주의는 통상 미국 신자유주의로 이해된다.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루카스의 새고전파 등 시카고 학파가 그 본류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 세계경제의 구조위기(달러의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 당시 케인스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신보수파의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 지칭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학설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등장 시기는 이보다 한 세대 이상 앞선다. 즉, 1930년대 세계대공황으로 당대의 지배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인 신고전파가 몰락하면서 케인스주의(사회적 자유주의)와 오이켄의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두 대안은 모두 자유시장경제와 국가개입을 결합해서 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유지한다는 이론적 혁신에 입각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그대로 두면 최적 균형과 완전고용이 아니라 불균형과 파국에 빠질 것이므로 국가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개입의 방식과 수단에 대해 양자는 상이했다. 정통파 케인스주의(신고전파 종합의 케인스주의)는 국가의 공공수요 창출을 통해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불황을 극복하고 완전고용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방식의 직접적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국가는 경쟁질서의 창출과 유지를 위해서만 개입해야 한다는 질서정책을 제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오이켄의 신자유주의는 독일에서 지배적인 경제학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런데 1970년대 이래 미국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을 비판하고 자유방임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구자유주의의 전통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학의 세계적인 헤게모니로 인해 미국 신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의 대명사로 회자됐다. 이는 개념 상의 착종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던 배경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있었다. 세계대공황을 계기로 독점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성장전화했다.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부르주아 경제학 내에서 이런 역사 변화를 이론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여기서 오이켄의 신자유주의는 독점자본주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반독점정책 등 국가의 질서정책을 통해 자유경쟁체제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망상을 이론화했다. 정통파 케인스주의 또한 국가의 확장정책을 통해 신고전파의 세계가 복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신자유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현실과 국가개입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30년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국가의 개입은 해체되지 않았고, 독점의 지배는 오히려 강화됐으며, 자본주의는 의연히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남아있다. 결국 이러한 교리로써 신자유주의자들은 독점자본과 금융자본의 현실의 지배를 은폐하고 노동자에 대한 착취 강화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국가개입주의의 방향을 바꾸고자 기도한 것이었다. 요컨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케인스주의적 형태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로 변화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에 따른 자유주의 경제학의 이 같은 변모에도 불구하고 케인스주의도, 오이켄의 신자유주의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적 발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케인스주의든 신자유주의든 그 교리와는 다른 운동법칙에 따라 작동했으며 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맑스의 이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서만 구할 수 있다. 전후 황금의 30년은 케인스주의의 덕택도 오이켄의 덕택도 아니었고, 평균이윤율 조건을 개선시킨 전후의 특정한 정치·경제적 조건에 기인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래의 세계경제의 구조위기, 스태그플레이션도 근본적으로는 자본축적에 따른 평균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관철과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케인스주의도 오이켄의 신자유주의도 모두 파산했다.

  미국 신자유주의가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주장은 처음부터 허무맹랑했다. 신자유주의 하의 위기는 케인스주의 시기와 비교할 수 없게 심화됐다. 뿐만 아니라 위기의 성격도 변화했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요약되는 케인스주의의 위기와 달리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저성장-고실업과 금융투기-금융위기의 메커니즘으로 표출됐다. 신자유주의는 독점자본의 이윤율 조건을 분명 회복시켰지만, 실물경제는 여전히 과잉자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긴축정책은 성장을 제약하고 고실업을 지속시켰다. 그 때문에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기회로 과잉자본은 금융시장으로 몰렸으며 투기적 이득에 열광했다. 그러나 투기적 이득의 원천은 실물부문에서 창출된 잉여가치였기 때문에, 실물부문을 압박하며 금융팽창과 투기로 나아가는 발전은 불가피하게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공학을 통해 개발된 각종 파생상품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선전과 달리 위험을 분산하고 예방하기는커녕 이 위기와 파국을 미증유로 증폭시켰을 뿐이다.

  지난 2007-2009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와 그 경제학은 완전히 파산했다. 금융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 처방의 결과로써 다시 불거지는 국가채무위기와, 국가채무위기로 더욱 악화되는 금융위기라는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악순환적 딜레마 속에서 자본주의는 이제 갈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기대하는 케인스주의로의 복귀도 난망할 뿐 아니라 현대 케인스주의가 위기를 극복하는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새케인지언은 이미 새고전파와의 논쟁에서 1980년대 이론적으로 그것에 수렴, 투항했다. 국제 사민당과 미국 민주당도 이른바 ‘제3의 길’속에서 199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로 수렴한 상태다. 그러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맑스주의적 전망이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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