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정당에서 일당체제로

<1921년 광동 공산당 창설 총회>

 
 

  창립 초기 중국공산당은 중화민국의 건국과 더불어 생겨난 숱한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 50명 가량이 모여 당대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국민당의 밀정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광동을 비롯해 각지에서 지부의 창설이 이루어졌지만, 1923년 3차 당대회가 열릴 때에는 당원이 4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하나의 정치집단으로 일어서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훗날 중국공산당은 1차 국공합작을 통해 대규모 정당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를 통해 1925년 중국공산당은 당원이 1만 명, 소속 노동자가 54만 명인 정당으로 성장한다.
 창립 초기 중국공산당은 중화민국의 건국과 더불어 생겨난 숱한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 50명 가량이 모여 당대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국민당의 밀정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광동을 비롯해 각지에서 지부의 창설이 이루어졌지만, 1923년 3차 당대회가 열릴 때에는 당원이 4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하나의 정치집단으로 일어서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훗날 중국공산당은 1차 국공합작을 통해 대규모 정당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를 통해 1925년 중국공산당은 당원이 1만 명, 소속 노동자가 54만 명인 정당으로 성장한다.

<2011년 중국 공산당 창설 90주년 기념대회>
 
 

  얼마 지속되지 않을 것 같던 중국공산당은 현재 90년의 역사와 8천만 명의 당원을 지닌 세계에서 가장 큰 정치집단으로 성장했다. 과거 중국은 ‘마오쩌둥의 중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인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강했다. 하지만  집단 지도체제의 원형을 확립한 이래, 부분적인 수정을 거치며 현재의 정치체제가 완성됐다. 이는 덩샤오핑이 권력을 쟁취하면서 생긴 변화로, 1인 중심의 권력을 분산해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현재 중국공산당은 전국대표회의와 중앙위원회를 최고의결기구로 하며 정치국과 상무위원회 같은 예하 조직을 가지고 있다.

이충만 편집위원  / mozg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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