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8.9 목 09:40
기획정치
창조적 변용, 중국공산당의 길소준섭 / 국회도서관 중국 담당 조사관
이충만  |  mozg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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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승인 2011.11.14  17: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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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7월 23일, 상하이에서 전국 각지의 대표를 포함한 총 54인의 중국공산당 당원들이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열었다. 이렇게 ‘초라하게’ 조직됐던 중국공산당은 창당 90년을 넘긴 지금 8천만 명이 넘는 당원을 거느린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정치단체로 성장했다. 기껏해야 수만 명의 ‘농민봉기군’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은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장제스의 국민당을 축출하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했다. 중국공산당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치명적인 착오를 거쳐 1978년 개혁개방 정책으로의 대전환을 실행했다. 이후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역시 곧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러한 회의적인 시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중국은 눈부신 부상을 거듭해 강력한 세계적 강국의 반열에 확실하게 올라섬으로써 중국공산당의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은 내외적으로 공인받기에 이르렀다.

  중국공산당의 인재 선발은 8천만 명이 넘는 당원 중에서 단계별로 우수 당원이 선발되고, 이렇게 선발된 수많은 우수 당원 중에서 또다시 치열한 경쟁구조를 거쳐서 지도급 간부들이 배출된다. 매년 2백만 명이 넘는 새로운 당원들이 벽지 행정조직의 말단조직이나 기업의 생산현장에 배치되고, 이들은 그곳에서 수년 동안 근무하면서 공산당 조직부의 시스템 속에서 단계별로 상급자와 동료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하여 상당 기간의 경력과 훈련 그리고 평가 과정의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 비로소 고위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주어진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베이징의 명문대인 칭화대학에서 수리공정(水理工程)학을 전공하고 간쑤성 건설위원회에 배치돼 그곳에서 약 10년 동안 지방업무에 종사하면서 두각을 나타내 중앙으로 발탁됐다. 특히 그의 발탁에는 당시 간쑤성 서기였던 쑹핑의 추천이 힘을 발휘했다. 원자바오 총리도 베이징 지질(地質)학원에서 지질구조학을 전공하고 간쑤성 지질국에서 일하다가 비전문가 출신인 국장을 대신하여 논리 정연한 브리핑을 함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아 중앙으로 발탁된 케이스이다. 그의 발탁에는 당시 지질광산부 부장 쑨다광의 추천이 있었다.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청년 간부 양성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성지로서 중국공산당 ‘장정(長征)’의 상징인 옌안과 마오쩌둥 유격투쟁의 본거지였던 징강산, 그리고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상하이 푸둥에 위치해 있는 간부학원과 중앙당교의 네 곳에서 수행된다. 약 20년 정도의 이러한 장기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지도자 배출이 이뤄진다. 2005년부터 가동된 이들 간부학원의 이념은 “실사구시, 여시구진(與時俱進: 상황에 맞춰 같이 나아간다), 간고분투(艱苦奮鬪), 집정위민(執政爲民: 인민을 위하여 정치를 시행한다)”이며, 당 간부만이 아니라 기업 관리자와 전문기술인 그리고 군인간부를 대상으로 공산당당사(黨史), 당 창건 이념, 혁명전통 교육 그리고 기본 국정 교육을 진행한다. 

                                 ‘창조적 변용’의 길

  러시아는 1990년대 이후 선거, 언론 개방, 다당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했고, 선거제도가 공식적인 권력 획득의 수단으로 됐다. 하지만 러시아의 연방제도는 구 소련의 정치적 틀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써 특히 ‘대통령부’의 소속 기구들은 이전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했고, 그 관리들은 기존 중앙위원회 간부들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들은 당연히 사회 각 세력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대의기능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더구나 시민사회의 형성은 대부분 ‘위로부터의 주도’ 혹은 ‘외부의 지원’을 통하여 의도적으로 이뤄졌다.

  반면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 과정을 거치면서 독특한 사회동원 체제를 구축했다. 러시아 혁명이 레닌의 볼셰비키에 의한 이른바 ‘혁명 전위’의 하향식 혁명이었던 데 반해 중국은 농민 대중과 결합한 장기적 항쟁 과정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했다. 또한 현재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선거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는 기층 조직 촌민위원회(도시의 경우에는 주민위원회라 불린다)는 원래 대중들의 자발적 조직으로부터 비롯됐으며, 개혁개방을 전국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인민공사 방식을 거부하며 시작한 농민들의 자발적 운동을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체제내화했던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러시아가 ‘명령식 동원’ 체제인 데 반하여 중국은 ‘참여식 동원’ 체제의 혁명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중국 사회주의 혁명은 실로 ‘창조적 변용 과정’ 그 자체였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덩샤오핑의 이론이 중국의 특수성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성을 각각 재구성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추론한다면, 중국 정치체제는 지금까지와 동일하게 향후에도 이른바 ‘창조적 변용’의 경로를 계속 모색시켜 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을 비롯해 대의민주주의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한 오늘, 과연 ‘중국 방식’이 어떠한 궤적을 그리며 진행될 것인가에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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