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소 연구원

 
 

  완전경쟁시장은 주류경제학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장의 형태이다. 수많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으며 누구도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없고 모두가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상품인지 모두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적정한 가격이 결정되고, 소비자와 생산자의 효용 역시 극대화된다. 이 같은 가정은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꽤 타당한 논리이다. 모두가 동등한 힘과 정보를 갖고 있다면 가장 공정한 거래가 일어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적했듯이 이는 비현실적이다. 현실 경제에서는 현격한 힘과 정보의 차이가 늘 존재한다. 힘과 정보에서 밀리는 약자들이 겪는 피해는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장의 효율성 아래 묻히고 만다. 지금 한국의 가계경제가 그렇다. 정부의 방치 속에서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점점 더 힘겨워지고 있다.

  올해 6월말 기준 가계부채는 8백76조 원으로 몇 년째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출 증가는 단순히 돈을 빌리는 가계의 책임만은 아니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의 책임도 크다. 아니, 금융기관의 책임이 더 크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은행들은 위험성이 큰 기업대출보다 안전한 가계대출로 영업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한 때 은행 창구에서는 돈을 빌려주겠다는 직원들의 제안이 끊이지 않았다. 원래는 대출자의 소득과 재산 등 여러 기준을 종합해 대출 기준을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대출을 해 준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처럼 대출금을 상환할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까지 대출을 제공하는 것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한다.

  아직 우리의 가계부채는 폭발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과정으로 2003년 카드대란이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길거리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카드를 발급해주겠다는 카드회사 직원들이 넘쳐났다. 그렇게 무리하게 신용을 확장하다가 결국 감당할 수 없어서 터진 것이 카드대란이다. 당시 카드를 발급해주겠다는 카드회사에 이끌려 카드를 발급받고 사용하다가 갑작스러운 신용대출 중지나 한도제한 등으로 4백만 명이 신용불량자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또한 상품을 판매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불완전 판매’도 큰 문제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에 난리가 났었던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판매이다. 지난 1월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를 시작으로 9월 토마토, 제일상호저축은행까지 8개월 사이에 16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예금이야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어느 정도 보상받을 수 있지만, 후순위채권을 구매한 사람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최근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판매는 2천2백32억 원 가량의 규모로 7천5백71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그런데 후순위채권을 구매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고금리 상품이 있으니 목돈을 투자하라는 은행 직원의 말을 따랐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가장 늦게 돌려받는 채권이라는 설명이나 예금자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 등을 듣지 못한 것이다.
또한 불완전 판매는 아니지만, 그럴듯한 포장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금융상품들도 많다. 최근 일부 은행에서 신용카드 사용실적에 연계하여 10%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하는 적금 상품을 출시했다. 얼핏 보기에는 평소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그대로 쓰면서 고금리까지 챙길 수 있는 좋은 상품 같지만, 신용카드로 최소 백50만 원 이상 사용해야 한다거나 전년도보다 더 많은 금액을 썼을 경우에만 해당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있다. 고금리를 받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소비를 늘려야 하는 구조이다.

  이처럼 금융기관들은 막강한 신용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약탈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금융자본을 향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어떠한가?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더 정확하게는 재벌 대기업의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됐다. 총수가 중심이 된 전근대적 소유구조와 경영방식, 각종 특혜를 받으면서도 적절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문제, 경제 권력을 넘어 민주적 사회운영을 방해하는 모습 외에도 최근 특히 대두되는 문제는 산업생태계의 무자비한 독재자로 군림하는 독점기업으로서의 문제이다. 현재 그들은 우리의 식탁에 있어서도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시장의 독점 정도를 파악하는 지표로 ‘집중도’가 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잠시 주춤하던 우리나라 상위 100대 기업의 일반집중도는 2000년대 들어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8년 기준 상위 100대 기업의 일반집중도는 51.1%로 198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경제에서 생산되는 제품 중 절반 이상을 100대 기업에서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집중도가 이러하니 일부 대기업의 매출액도 급증하고 있다. 2010년 기준 상위 4대 재벌 대기업(삼성, 현대자동차, SK, LG)의 총 매출액은 6백3조 원으로 전체 명목 GDP의 51.4%를 차지했다.

  대기업의 높은 시장지배력은 우리의 현실적 식생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라면의 경우 국내 라면 업계의 전체 판매 중 약 70%가 농심이다. 서민들의 술인 소주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다양한 제품이 공존하던 것이 이제는 진로 한 회사의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두부도 마찬가지로 현재 풀무원겢六�갅J의 점유율이 84%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에서는 어김없이 대기업들이 독점 또는 독과점 기업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가 식생활에 관련된 것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점이나 독과점은 서두에 제시했던 완전경쟁시장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소수의 생산자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애초에 박탈당하며, 소수 기업들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서 상품의 가격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나 설탕 값이 툭하면 인상되지만 결코 인하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독점에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의 영역까지 대기업이 진출하고 있다. 골목 곳곳에는 대기업들의 기업형슈퍼마켓이 들어섰다. 재래시장은 없어지고 있으며 김밥집이나 빵가게, 동네의 중소형 도소매 음식업, 커피 전문점에도 대기업이 속속들이 진출하고 있다.

  대기업이 기존 시장에서 획득한 지배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신생기업의 등장과 중소기업의 성장마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가 발생하고, 그 중에 성공을 거두는 것도 있고, 실패해 사라지는 것도 있어야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독과점은 이를 막는다.

  백 번 양보해서 이들의 독과점을 통해 우리 경제가 효율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적어도 독과점의 피해를 받아야 했던 소비자, 중소기업, 영세상인과 같은 국민들에게 성장의 대가가 돌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기업과 가계의 성장격차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이 과연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만들지가 의문이다. 소비자의 건강을 위한 좋은 식품은 비용의 증가를 낳는다. 기업의 논리로 보면 이는 이윤을 저하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줄이고, 금융기관의 약탈적 대출과 불완전판매를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규제이다. 현실에서 완전경쟁시장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현실을 완전경쟁시장과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는 힘과 정보력의 차이에서 피해를 보는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주체는 정부일 것이다. 정부는 몇몇 기업의 이윤이 아닌, 대다수 국민의 생활과 건강을 위해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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