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선 / 고등과학원 물리학과 교수

 
 

현대 우주론을 낳은 중요한 세 가지 이론이 있다. 그 시작은 알레산더 프리드만의 우주팽창이론이고, 다음은 조지 르마트르의 빅뱅이론이며, 마지막은 알란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이다.

난 이 세 가지 위대한 사상을 현대 우주론을 떠받치고 있는 세 개의 기둥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관측된 사실들을 덮어주는 세 장의 짧은 담요라고 말하고 싶다. 이 짧은 담요라는 말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우루과이의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이 축구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넓은 축구장을 덮기에 11명의 선수들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우주론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관측된 사실을 덮기 위한 이론을 끌어당기면 찬바람에 다른 곳이 노출돼 버린다. 그곳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이론을 제시하지만 여전히 시린 곳이 남아 있는 것이다.

프리드만의 우주팽창은 은하들이 모두 멀어지는 현재의 현상을 덮어주는 이론이지만, 먼 과거의 우주를 설명하지 못했다. 르마트르의 빅뱅이론은 프리드만이 덮어주지 못하는 우주의 과거 혹은 시초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관측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미 두 장의 담요를 덮었지만, 여전히 추위에 다른 부분이 노출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빅뱅이론에서 시작해 시간을 진행해 보면, 과거에 서로 소통한 적이 없는 두 지역이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구스가 1980년대 인플레이션 이론을 발표할 때까지 표준우주모형의 결정적인 결함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프리드만의 우주팽창 이론이 가정하고 있는 두 우주원리가 문제였다. 프리드만은 특정한 방향성이 없는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서 관측된 적이 없는 우주의 등방성과 균일성을 가정했다. 우주의 등방성이 설명하는 것은 지구 위에서 바라보는 팽창은 어느 방향으로도 같다는 것이고, 우주의 균일성이 설명하는 것은 지구 위에서 바라보는 팽창과 안드로메다에서 바라보는 팽창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균일성의 문제가 위에서 지적한 인과성의 문제와 충돌한다.

이 문제는 역사학자들에게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 과거에 서로 소통한 적이 없던 다른 두 지역의 문명을 연구하던 역사학자들이 두 문명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고 가정하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같은 생활양식을 공유하고 있다면, 이것은 수천 개의 동전을 던져서 모두 앞면을 얻을 확률과 같은 우연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에서는 이러한 우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주가 균일하다고 가정했는데, 서로 과거에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던 지역까지 밀도가 같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구스가 인플레이션 이론을 발표하기 전에 안고 있었던 패러독스였다.

구스가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70년대 말은 입자표준모형이 정립된 시기였다. 입자표준모형은 자연의 단순함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일상적으로 관측되는 낮은 에너지의 세계에서는 전자기력이나 약한 상호작용력같은 이질적인 힘들이 존재하지만, 고온에서는 이러한 이질적인 힘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초대칭 상태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온도가 낮아지게 되면 강의 물줄기가 평지에 계곡을 만들듯이 기존의 에너지 최저점보다 더 낮은 곳이 생겨나게 된다.

이 모형을 우주론에 적용하면 우리는 상당히 흥미있는 결과를 얻게 된다. 우주팽창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돼 순간적으로 이 우주는 엄청난 크기가 되는 것이다. 이 순간적인 확장은 효과적으로 인과론적인 문제를 설명한다. 초기에는 빛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와 있던 작은 영역이 인플레이션을 거치면서 아주 거대한 크기로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영역이 인과론적인 경계를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끝난 후에는 다시 빅뱅 이후에 진행되던 평범한 우주 팽창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현재 관측하고 있는 이 우주는 인플레이션 이전에 이미 인과적인 경계 안에 놓였던 지역이기 때문에 균일하다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바로 이것이 구스가 이어 놓은 우주론의 세 번째 짧은 담요이다.

구스는 1980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인과론만이 아니라 우주의 평평함도 인플레이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지구는 둥글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계의 범위에 비해서 크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지구의 평평함을 경험한다. 비록 태초에 우주가 평평하지 않았더라도 그 크기가 급격히 팽창하고 나면 지역적으로는 평평한 우주를 경험할 것이다.

이제 구스가 인플레이션 이론을 발표한지 30년이 지났다. 이 짧은 시간동안 관측 우주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2000년대 우주배경복사 관측 위성인 WMAP은 우주가 99% 이상의 확률로 평평하다는 사실을 관측해냈다. 이것은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이 예측한 것과 일치한다. 또한 WMAP은 은하의 생성을 설명할 수 있는 태초의 비균일성도 관측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관측치가 인플레이션 모델이 예측한 결과와 잘 맞아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검증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인플레이션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중력파의 관측이다. 인플레이션 이론의 특징은 은하의 기원이 되는 태초의 비균질성을 생성함과 동시에 미세한 중력파도 함께 생성시킨다. 이 두가지 다른 관측량이 하나의 같은 기원에 의하여 나왔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게 된다. 만일 중력파가 관측이 되면 이 상관관계를 통해서 인플레이션 모형 중 가장 간단한 모형을 검증할 수 있다.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이 정말 관측으로도 검증될 수 있을지 우리 모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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