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집’이 ‘돈’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앉은 자리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거나, 재개발을 통해 더 비싼 집을 갖게 되거나. 물론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고, 무엇보다도 집의 주인일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의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한국의 개발주의는 집의 주인이 된 사람과 주인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 ‘집’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왔다.

한국에서 개발주의를 본격적으로 작동시킨 것은 박정희 정권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은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확고하게 각인시켰다. 동시에 건설교통부와 같은 개발 부서의 입지를 확보하고 대규모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개발주의의 물적 토대를 만들었다. 그 중 주로 주택재개발이 이루어진 도심 재개발은 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추진됐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대부분은 무허가주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도심의 ‘부끄러운’ 모습을 지우기 위해 도심 재개발을 시도했고, 1970년대부터 가속도를 붙이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도심 재개발은 차츰 잦아드는 분위기였으나, 2000년대 들어 ‘뉴타운’을 통해 다시금 활황기를 맞게 된다. ‘뉴타운’은 2000년대에 다시 살아난 ‘새마을’이었다. 30여 년 동안 서울에서 이루어진 개발 사업의 면적과 맞먹는 면적이 뉴타운의 대상 지역이 됐고,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뉴타운 지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용산참사가 발생하기 한 달 전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타운을 시작한 자의 생각은 명쾌했다.

물론 정부는 언제나 ‘저소득층 주민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재개발에서 저소득층 주민의 주거 환경이 고려됐던 적은 없다. 단지 주택의 물리적 여건만 고려됐기에 저소득층 주민의 주택은 개발을 통해 사라져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이 밀려나면서 찾아간 곳 역시나 저렴한 주택이 많은 동네일 수밖에 없었고, 그곳도 곧 개발의 대상이 됐다. 1980년대에 개발됐던 서울의 동네들은 대부분 1970년대 도심 판자촌을 대규모로 철거하는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찾아들어 자리 잡은 곳이었다. 지금도 개발 사업의 대상 구역에는 저소득층 주민들이 평균보다 훨씬 많이 거주한다. 정부의 말과 달리, 재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딘가에 정착할 권리를 박탈하는 과정이었다.

1970년대부터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애써 자리 잡은 ‘집’을 빼앗는 것에 항의했다. 개발은 이들의 재정착을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 집들이 낡았다는 점만 고려했다. 노후하고 불량한 주택들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면 어김없이 개발의 대상이 됐다. 동네를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것인지 주민들은 알 길이 없었다. 동네가 살기 좋아진다면 반가운 일이었고 설마 자신이 그 동네를 영영 떠나게 되리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 개발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철거만 남겨둔 때였다.

1990년을 전후로 세입자를 위한 임대아파트가 건설됐고 개발 구역의 세입자들에게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입주권은 입주를 보장하지 않았다. 임대아파트의 임대료와 관리비는 개발 구역에서 살던 세입자들이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가난한 세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싼 집을 찾아 멀리 떠나는 것뿐이었다. 오래 살던 집과 동네를 떠나는 것은 서로의 가난을 이해하며 기대어 살던 이웃을 잃는 것이기도 했다. 떠난다고 해서 더 나은 집에 살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철거민들은 ‘집’을 보장하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개발주의에 물든 사회가 철거민들의 투쟁을 읽는 방식은 달랐다. 사회는 보상이 적다고 생떼를 쓰는 소리로 들었다. 받을 자격 없는 사람들의 저항, 받을 만큼 받은 사람들의 욕심, 이런 독법은 개발의 문제점에 대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소통이 막힌 자리를 대신한 것은 폭력이었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살던 집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이 집과 동네들은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치외법권이었다. 매일같이 다니던 골목을 어느 날 갑자기 덩치 큰 남성들이 점령하고 협박을 일삼았다. 운이 좋아 먼저 떠났거나 무서워서 먼저 떠난 사람들이 비운 집들은 흉하게 허물어졌다. 빈집을 철거하면서 전기나 수도가 훼손되기도 했다. 집을 잃게 된 사람들은 갈 곳이 없는데, 개발을 추진하는 자들은 더 이상 보상해줄 수 없다며 막무가내로 내쫓는다. 이것이 흔히 ‘용역깡패’라고 불리는 집단이 하는 일이다.

개발은 철거용역업체 없이 추진되기 어렵다. 재개발을 위해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발을 밀어붙이기 위해 기존에 살던 주민들을 퇴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철거업계를 주름 잡았던 ‘적준용역’은 사라졌지만 그 뒤를 이은 유수의 철거업체들은 지금도 개발 현장에서 숨은 공신 노릇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이주촉진업무’라고 부른다. 주민들의 이주를 위해서 적절한 재정착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누구도 하지 않고 집을 보장하라는 철거민들의 목소리는 허공에서 흩어져 버린다. 결국 철거 대상 건물에 남아 있는 철거민들의 몸은 용역깡패의 손에 내맡겨진다.

폭력은 결국 개발주의에 찌든 사회가 ‘집’을 시장의 품에 안겨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합동재개발 방식은 개발이 사적인 문제로 오해되기 쉬운 구조를 만들었다. 토지나 주택의 소유주들이 조합을 만든다. 조합은 자신들의 땅에 집을 새로 지으려고 건설사와 계약을 한다. 건설사는 아파트를 지어 수익을 남기고 조합원들은 아파트에 입주해 재산을 불린다. 그래서 개발은 재산권의 행사로 이해되고 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 법의 근본정신을 거스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개발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시작된다. 그들이 개발이 필요한 곳이라고 지정해줄 때에 조합도 만들어질 수 있고 건설사도 일감을 얻게 된다. 그런데도 개발로 인한 갈등에 대해 정부는 ‘사인 간의 문제’라며 손을 놓는다. 2009년 용산참사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사인 간의 관계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을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용역깡패들의 괴롭힘이나 폭행으로부터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물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을 놓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발을 부추겨온 것이 그들이다. 주택이 부족하거나 주거 환경의 낙후가 문제될 때 정부는 건설사와 조합에 이윤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했다. 개발은 집의 주인인 사람과 주인이 되지 못한 사람이 대립하는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건설사와 조합의 이윤을 창출해내는 재료로 가공해주는 공적인 문제다. 이런 구조에서 원주민 재정착률이 20%를 밑도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더욱 야만적인 것은 이런 보고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살게 되는지 사회가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 자체가 최근의 일이라는 점이다.

주택재개발이 한창일 때 시장에서는 ‘딱지’가 엄청나게 사고 팔렸다. 새로 지어질 아파트의 입주권을 이르는 ‘딱지’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사유화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딱지’가 사고 팔릴수록 ‘집’은 유예됐다. 재개발은 주택을 건설하고 공급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거침없이 활용됐지만 주민들에게 ‘집’을 보장하는 정책은 되지 못했다. 이제 그렇게 지어진 아파트들을 광고하며 건설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 집은 또 다른 의미에서 ‘딱지’가 됐다. 건설사는 상품을 광고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집’으로 읽는다. ‘집’에 대한 불통은 개발주의의 이면이다. 더 늦기 전에 ‘집’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 2009년 용산참사 이후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위한 선언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http://noeviction.net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