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대기권을 벗어난 환경에 노출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우주 개발 초기의 중요한 숙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명체를 이용한 우주 비행 실험이 계속돼 왔다. 가장 먼저 생명체를 이용해 실험을 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46년 V-2 로켓에 파리를 실어 발사했고, 이후 1948-50년에는 원숭이를 탑재했다. 당시에는 쏘아올린 비행체를 회수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그 원숭이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반면 50년대 초 소련은 원숭이 대신 개를 실험동물로 선택했다. 실험 시 개가 원숭이보다 침착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51년과 52년 사이 R-1 로켓에 9마리의 개가 실려 발사됐다. 다만 그것은 실질적 우주비행이라기보다 고도 100km 이하의 준궤도 실험이었다. 그리고 57년 10월 4일,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소련은 여세를 몰아 11월 7일 볼셰비키 혁명 40주년에 맞춰 스푸트니크 2호를 준비했다. 여기에 탑승한 것이 그 유명한 우주 개 라이카다. 급박한 일정에도 스푸트니크 2호는 산소 발생 장치와 이산화탄소 제거 장치, 온도를 15℃로 유지시키는 환풍기, 7일간 개가 먹을 우주 식량, 대소변을 모을 장치 등을 갖추고 있었다. 개가 입는 우주복은 우주선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으며, 몸에 부착된 장치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소련은 발사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라이카는 일주일간 1,600km를 여행하다 마지막 날 독이 든 식사를 하고 마지막을 맞이하였노라 발표했다. 이후 라이카로부터 영감을 얻은 각종 음악, 영화, 소설, 동화 등이 쏟아져 나왔으며, 한동안 라이카는 우주여행과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02년 스푸트니크 2호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한 과학자의 폭로로 라이카의 우주여행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사실은 발사 5시간 후 라이카의 생명신호가 끊겼으며, 사인은 공포와 고온이었다는 것이다.
동물을 이용하며 계속된 미·소간 유인우주실험 대리전은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의 우주 유영으로 소련이 승리를 거두며 끝났다. 

 
 

황인찬 편집위원 | mirion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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