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민 / 고려대 강사



  프랑스의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은 20세기와 21세기를 거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네 번의 구조적 위기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구조적 위기란, 경기변동 상에 나타나는 그 어느 경기침체 국면보다 지속적이고 깊은 영향력을 미치는 위기를 의미한다. 첫 번째와 세 번째 구조적 위기는 19세기 말-20세기 초와 1970년대 발생했고, 두 번째와 네 번째 구조적 위기는 대공황과 2000년대 발생한 닷컴버블과 서브프라임 위기를 지칭한다. 이러한 과정은 케인즈주의의 부상과 쇠퇴, 그리고 ‘복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흔히 이야기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인즈주의는 첫 번째 구조적 위기 이후 조금씩 부상해 결국 대공황 및 2차 대전 전후 사회의 조직원리 및 경제학의 주류이념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등장한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위기를 전후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강건한 위세를 조금씩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이후 위축되어 있다가 다시 2000년대 위기와 함께 복귀의 신호탄을 올렸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케인즈주의는 경제학의 케인즈주의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경제학 담론 내의, 특히 미국 주류 케인즈주의는 사실 이른바 절충 과정을 통해 주류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왔다. 한국에 번역돼 있는 많은 교과서들을 보더라도 대부분 케인즈주의자(맨큐, 스티글리츠, 크루그먼 등)에 의해 쓰여졌다. 미국의 주류 케인즈주의는 이후의 여러 도전(신고전학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도전의 일부를 흡수하면서 꾸준히 발전해 왔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케인즈주의는 이와 조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정의를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케인즈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광범위한 의미에서 2차 대전 전후에 나타난 사회적 타협을 지칭한다. 경제학적 케인즈주의는 전후 주류의 위치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케인즈주의의 쇠퇴 시기라고들 이야기하는 70년대의 슬로건이 ‘우리는 모두 케인즈주의자다’라는 것은 이를 잘 나타내 준다. 하지만 또 다른 광범위한 의미의 사회적 타협을 지칭하는 ‘케인즈주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부상과 쇠퇴, 그리고 아직 말하기는 이르지만 (최소한 담론적 수준에서) 복귀 과정을 거쳐 온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뒤메닐은 전후에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케인즈주의적’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사회계급의 형세를 바탕으로 하여 ‘관리주의적’이라 부르길 권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대공황과 2차 대전 후에 공고화됐다가, 70년대 이후 쇠퇴했고 최근 금융위기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케인즈주의는 사실상 경제학적 의미의 케인즈주의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적 타협 또는 질서를 의미한다. 

  즉 경제학의 거시경제적 관리를 축으로 하는 케인즈주의적 담론과 일정 시기를 대표한 사회적 질서로서 케인즈주의(또는 관리주의적) 타협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대공황 및 2차 대전 이후 케인즈주의라고 부르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수립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대체로 거시경제에 대한 관리가 그 축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거시경제에 대한 관리로만 머물지 않고, 관리직을 주축으로 한(이러한 관리직 계층의 등장은 20세기 초 나타난 소유와 관리의 분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수립했다고 보아야 더 정확하다.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를 통한 소유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여러 사회정책 등이 이 새로운 사회질서를 통해 탄생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사회질서는 계급투쟁의 형세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20세기 초반 나타난 강력한 사회운동이 이 질서를 가능케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운동이 완전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소유자 계층도 현실 사회주의권을 제외하고는 억압됐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또한 관리직 계층이 꾸준히 성장해 사회운동을 통한 기층민중의 성장을 동시에 억압했다. 70년대 위기는 이러한 사회질서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고,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케인즈주의의 쇠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쇠퇴한 것은 케인즈주의가 아니라 기층민중의 사회운동이었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쇠퇴를 바탕으로 하여 소유자 계급이 복귀했고, 관리직 계층과 타협해 새로운 질서, 즉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 내에서 만들어진 기관 및 장치들을 여전히 사용했다.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경제 개입이 축소됐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다만 그 목표가 변형돼 나타났다. 소유자 계층의 부와 권력을 공고화시키는 데 복속됐다는 의미이다.

  2000년대 초반 나타난 새로운 위기를 보고 케인즈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이 다시금 주목받는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진단이라 할 수 있다. 케인즈주의는 이미 주류적인 논의 속에 포함돼 있다. 즉 쇠퇴한 적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케인즈주의적 타협, 아니 관리주의적 타협이라고 불리는 대공황 및 2차 대전 이후 나타났던 그 사회질서가 복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그러한 사회질서가 다시 복귀할 것이라 낙관하기 힘들다. 최근에 도처에서 이전의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비판하는 사회운동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이 하나의 대안 및 대안적 세력으로 주목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아직은 이러한 사회운동들이 사회의 기층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회운동들이 지향하고 있는 것 또한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회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앞으로의 새로운 질서를 어떤 식으로 제기할 것인지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대중적 힘을 갖는 사회운동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케인즈주의적(또는 관리주의적) 타협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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