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 영화감독

 ■ <방문자> (감독 신동일, 2006)
 ■ <방문자> (감독 신동일, 2006)

  영화 <방문자>(감독 신동일, 2006)는 관객을 향해 시종일관 정직한 직구를 던진다. 영화는 어떠한 순간도 에둘러 말하거나 멀리 돌아가지 않는다. 주제의식을 향해 끝까지 단순명쾌하게 달려가는 이 영화의 목소리는 때론 불편하고, 부끄럽고, 노골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바로 그러한 직설화법이 무거운 주제에 신선한 재미와 활력을 가져다주고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이야기는 영화과 시간강사인 30대 이혼남 호준(김재록)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영화 속 누군가가 말했듯 호준은 소위 ‘개털’인 인생을 살아가는, 심사가 뒤틀린 괴팍한 지식인이다. 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가슴에 묻은 채 교수채용 홈페이지를 뒤적여 보거나, 야동을 보거나 여자를 불러 욕구를 풀며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영화의 초반부, 공원으로 산책을 나온 호준이 프레임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한참 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들어와(사실은 공원을 한 바퀴 돈 것) 헉헉거리며 괴성을 지르는 장면은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도 사슬에 묶인 듯 제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그의 갑갑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게 삶의 방향을 잃고 무력한 일상을 보내던 호준은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중, 화장실 문이 잠겨 갇혀 죽을 지경이 된다. 다행히 방문 전도를 나온 20대 신학도 계상(강지환)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독특한 우정을 쌓아간다.

  만사에 불만투성이인 까칠한 아저씨 호준과 자신의 신념을 완고하게 지켜나가는 긍정적이고 순수한 청년 계상은 사실상 극단의 대척점에 있는,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둘을 기어코 연결시키고 만다. 이러한 진행 역시 오직 주제 만을 향해 이야기를 뻗어나가는 영화의 우직한 화법의 일환으로 보인다. 길을 잃고 흔들리던 호준의 삶은 판사 앞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는 계상을 지켜보며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감옥으로 면회를 간 호준이 계상에게 “이제 내가 너 꺼내줄게”라는 말을 건낼 때, 애써 불안감을 감추던 계상의 눈빛이 점차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가 목표로 삼고 달렸던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삶의 방향과 믿음을 잃었던 자가 우연한 방문자의 도움으로 제자리를 찾고, 그 힘으로 이젠 스스로가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문자’가 되는 것. 어쩌면 판타지에 가까운, 이러한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한번 믿어보는 것. 그것이 영화가 관객을 향해 던진 가장 강력한 회심의 직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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